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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감독, 관객을 만나다 [2] - 장진 ①
사진 손홍주(사진팀 선임기자) 정리 최수임 2002-05-10

이야기꾼 장진, `메이드 인 자기`에 대해 수다를 떨다

“영화 많이 좋아하지 마세요, 아류가 돼요”

이날은 원래 박찬욱 감독과의 대화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전주영화제에서 <공동경비구역 JSA> 상영행사에 참가하고 올라오던 박찬욱 감독은 6시쯤 차가 너무나 막혀 제 시간에 닿기 힘들 거라는 소식을 전해왔고, <씨네21> 진행자는 부랴부랴 5월2일 순서로 예정돼 있던 장진 감독님을 모셨습니다. 박찬욱 감독을 만나러 참석했던 독자 여러분, 그리고 5월2일 장진감독과의 대화를 기다리던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립니다. 이탈리아의 ‘우디네영화제’에 참가했다가 서울에 온 지 불과 2시간 만이라 경황도 없으셨을 텐데 특유의 재치있는 솜씨로 행사를 이끌어준 장진 감독님께는 감사하다는 말씀을 다시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장진입니다. (박수) (마이크를 뽑아들고 일어서며, 사회자석에 앉아 있는 남동철 기자에게) 여기 계속 앉아 계실 건가요? (남동철 기자, 웃으며 내려간다. 단상 테이블에 걸터앉는 장진 감독.) 제가 이탈리아의 무슨 영화제에 갔다가 오늘 2시간 전에 서울에 왔어요. 그래서 시차적응도 안 되고, 한국말도 많이 잊어버려서…. (웃음) 이 자리가 참 애매해요. 무턱대고 ‘젊은 감독들, 관객을 만나다’라고 해놓았는데, 관객 만나서 뭘 어쩌자구? (웃음) 게다가 이 네명을 다같이 젊은 감독이라 그러면 어떡해요. 박찬욱 감독이나 김지운 감독은 나한테 삼촌뻘인데…. (웃음)

저는 지금 32살이에요. 71년생이죠. 학교 다닐 때는 연극을 했고 안 믿겠지만 연기를 전공했어요. 그러다 만들어보고 싶어서 연출을 했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 써보고 싶어서 써도 봤고…. 솔직히 영화가 꿈은 아니었어요. 저는 영화를, 1995년 말 <개같은 날의 오후> 시나리오를 쓰면서 시작했어요. 그리고 <모래시계>의 김종학 감독이 불러서 제이콤 들어가서 <쿠데타> 준비하다가 잘 안 돼서 심심해서 쓴 게 <기막힌 사내들>이었어요. 1주일인가 열흘 만에 썼는데, 김종학 감독이 보고 “이런 거 누가 하냐, 네가 해라” 해서(웃음) 원한 것보다 빨리 감독을 하게 됐죠. 그리고나서 ‘반공영화’ <간첩 리철진>, ‘킬러권장영화’ <킬러들의 수다>를 했죠. 단편이나 디지털 단편작업도 조금 했구요. 기타 연극도 좀 했어요. 그런 절 더러 ‘크로스오버’라는 말을 하기도 하죠. 하지만, 전 제가 그냥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해요.

감독 되기는 쉽다, 감독으로 살기는 어렵다

비가 오는 날 여기까지 찾아왔다면 저보다 몇배 더 영화에 대한 광팬이겠죠. 오늘 여러분과 2시간 동안 이야기를 할 텐데 제 얘기의 30% 정도는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고 심지어 책에도 나와 있는 것일 테고, 30%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것들일 거고, 40%는 나부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새빨간 거짓말일 거예요. 그런 걸 염두에 두시고… 제가 요즘 한국영화판에 대해 할 수 있는 얘기를 좀 해볼게요. 대한민국은요, 감독 되기 가장 빠른 나라인 것 같아요. 감독이 되는 길은 크게 4가지가 있죠. 옛날식으로 충무로에서 연출부부터 시작해서 10년 걸려 조감독, 감독 되는 거. 근데 확률은 얼마 안 돼요. 다음, 1990년대 중반 ‘검증 안 된’ 유학파들이 들어왔는데, 이제는 거의 그 바람은 사그라들었죠. 다음, 국내에 자생적으로 생긴 독립영화인들의 경우예요. 어디 단편영화제에서 상을 받거나, 하다못해 졸업작품이 눈에 띈 후 감독이 된 경우인데, 그들은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죠. 허진호, 정지우가 그 예예요. (웃음) 단편영화에서 먹을 거 다 먹고 온 분들이죠. 다음이 시나리오를 쓰다 감독이 되는 경우예요. 라인 프로듀서 시스템 안에서 차라리 좋은 각본가가 감독 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돌았고, 그 예가 김지운, 김기덕, 장진이죠. (웃음) 시장에 빨리 나간다는 장점은 있는데 전문 시나리오 작가가 없다는 문제가 있어요. 지금 유학파 바람은 죽었지만, 단편이나 조감독 출신 중에 모든 사람들이 ‘0순위’라고 하던 사람들은 첫 작품은 실패해도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은 성공하더라구요. 송해성 감독이 그 경우예요. 요즘은 20대 감독들도 많은데, 감독되기는 쉽지만 감독으로 살기는 어려운 나라가 또 한국이에요. 저는 언제나 ‘이 작품이 유작이 될지도 몰라’ 하며 만들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감독은 불행하고 위험한 직업이에요.

(이 밖에도 배급사의 힘, 라인프로듀서 시스템, 시나리오 작가의 현실, 배우 캐스팅의 문제와 대안, “실력으로 승부해야지, 젊은 사람들 중에는 쪽팔려하는 사람도 있다. 태권도 쿼터를 생각해보라”는 스크린쿼터에 대한 딴죽 등 한국영화계 전반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고, 곧 질의응답 시간이 시작됐다.)

-저는 장진 감독님의 광적인 팬이거든요. 휴가 나와서 내일 복귀하는데, 원래 5월2일이 장진 감독님 차례라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순서가 바뀌니 인연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너무 좋아서 여기저기 (팬클럽에) 가입을 했는데, ‘필름있수다’는 서울예대 사람들 위주의 조직이더라구요. 저는 연대라서…. 어떻게 안 될까요?

=조직이라니까 좀 그렇네요. (웃음)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학연이에요. 서울예대도 막 가고 싶어 간 학교는 아니었어요. 저는 전문대를 7년 다녔는데(웃음) 친척들은 절더러 ‘의대 다니냐’고 했죠. 군대 어디 있어요? 빨리 군대 마치고, 졸업하고 들어와요.

-저는 연극 전공으로 입학해서 영화로 전공을 바꾼 연극영화과 학생인데요, 감독이 하는 일 중엔 연기지도도 있잖아요. 연극을 하고 영화하는 게 어떤 도움이 되나요?

=도움이 많이 돼요. 제가 스물여섯살 때 첫 영화 연출을 하면서, 최종원, 양택조, 이런 분들을 상대했거든요. (웃음) 저는 연극할 때 연기지도를 하는 게 아니라 연기제안을 해요. ‘이게 잘 안 되면 이런 것 어떻겠냐.’ 그래도 그래도 안 되면 ‘미안하다. 너 딴 역할 해라’ 뭐 이렇게. (웃음) 영화 갓 연출하는 사람들이 헤매는 이유가 카메라 스위치 켜기 전에 배우를 고작 5번밖에는 못 만나는 데 있어요. 연극하는 사람들은 한 작품 올리기 위해 배우를 50번은 만나잖아요. 저는 <택시 드리벌> 때는 당대 최고배우라는 최민식씨를 60번은 만났어요.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그렇게 해본 감독은 배우를 어떻게 대하고 다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죠. 연극은 직접 연출을 안 하더라도 연습현장에 있기만 해도 도움이 될 거예요.

-학교에서 영화소모임을 하면서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하고 치이고 부딪히고, 영화만들기가 너무 힘든데, 현장에서의 노하우를 알려주세요.

=뭐, 카리스마죠. (웃음) 그게 웃을 문제가 아니에요. 카리스마가 얼마나 현장을 부드럽게 하고 모든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데요. 인상, 욕, 골질, 이런 게 카리스마는 아니에요. 이 작품에 관한 모든 것을 감독은 누구보다 제일 잘 알고 있어야 해요. 그게 카리스마예요. 예를 들어 점심을 언제 먹냐 하는 문제가 있다고 해요. 감독이 몇컷을 얼마 만에 찍을지 딱 예상을 해서 그대로 연출부가 식당 예약을 하고 먹는 거하고, 잘 몰라서 예약하라고 해놓은 시간에도 계속 촬영 못 끝내고 있는 거하고, 얼마나 현장이 달라지는데요. 감독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유연성도 중요하죠. 감독이 너무 꿍하거나 너무 예술가면 안 좋아요. 가끔 조명부 막내 어깨도 주물러주고, 그의 이름도 불러주고… 저, 그런 거 잘해요. (웃음)

-<킬러들의 수다>에서 화면을 둘로 분할한 장면이 참 재밌었어요. 어떻게 생각해내신 거죠? 그리고 캐스팅 기준은 어떤 건가요?

=화면 분할한 건, 대단한 건 아니고 한번 해본 거예요. 근데 그런 치기어린 테크닉은 한달 후에 보면 후회가 돼요. ‘내가 왜 이렇게 까불었지?’ 하게 돼요. 그저 관객이 뭘 좋아할지 반발 앞서 알고 그걸 한 것이거든요. 캐스팅은, 물론 스타가 좋아요. 관객이 많이 들어서가 아니라 스타는 이름값을 하거든요. 신현준이나 원빈이나 제가 캐스팅할 때만 해도 그렇게 스타는 아니었죠. <킬러들의 수다>는 그래도 제 영화 중에서는 호화 캐스팅이에요. 근데 그들, 정말 이름값을 하더라구요. 신현준보고 눈만 부라린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정말 연기 잘하는 배우예요. 정말 그 가격대 그런 배우 없어요.(웃음) 아무도 모르던 장면간 연결문제 같은 걸 딱딱 집어냈죠. 원빈은, 뭐 꽃미남이라고 하잖아요. 전, 처음 보고 기획사 사람한테 ‘애 옷도 안 사주냐’고 했어요. (웃음) 원빈은 카메라가 어떻게 클로즈업 들어가도 다 각이 나오는 흔치 않은 배우에요. 스타의 이름값이라는 것, 하지만 저는 그것 때문에, 내가 원하는 걸 바꾸지는 않아요. 한석규 캐스팅이 안 돼서 영화 엎어지고, 그런 건 말도 안 되잖아요. 내가 만들려는 이야기보다 위에 있는 건 없어요.

-하지만 제작사하고 부딪히는 경우도 많을 것 같은데요.

=하면 할수록 귀를 많이 여는 편이에요. 그들 말이 나중 가면 맞거든요. 그나마 내가 썼기 때문에 저는 ‘싫으면 관둬요’ 하고 시나리오 들고 나오는 수가 있어서 내맘대로 할 수 있는 거죠. 소소한 것들은 귀를 점점 열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게 어긋나면 누워야지, 별 수 있나요. (웃음) 배 째라 하는 거예요. <킬러들의 수다> 때 정재영 캐스팅 갖고 한번, 마지막 검찰청 들어가 총쏘는 장면 갖고 한번, 총 2번 누웠어요. (웃음)

-감독님 영화에는 같은 여자 이름이 계속 나오는데요. 자기를 버린 여자라는 소문이 있는데, 영화 보고 돌아오라는 건가요?

=<씨네21> 안 보시죠? 거기 문답 코너에 나왔는데. 제 영화에는 ‘화이’라는 여자가 계속 나오는데, 역대 화이만 모아도 꽤 될 거예요. 그걸 갖고 제 과거를 추측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과거 여자 얘기하면 어떤가요. 그런데 그런 건 아니구요, 그냥 지은 거예요. 저는 소개팅, 미팅, 헌팅, 이런 거 한번도 안 했거든요. 근데 화이라고 해놓고서 ‘화이팅!’ 하는 거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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