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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져
2002-05-16

비디오/메인과 단신

Bruiser 2000년, 감독 조지 A. 로메로 출연 제이슨 플레밍, 피터 스토메어, 레슬리 호프, 니나 가비라스 장르 스릴러 (베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감독 조지 A. 로메로가 ‘슈퍼 히어로’ 영화를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그는 왜 가면을 쓰게 된 것일까, 라는 질문에, <브루져>는 로메로식으로 답변한다.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것이라고. 공포영화에서 흔한 설정의 하나는, 우연한 기회에 자기 내부의 악마성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평범하고, 착하게 살아왔지만 사실 그의 내면에는 잔인하고, 사악한 내면이 존재한다는 것. 아마도 우리 모두가. <부르져>는 조금 더 비튼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신의 얼굴, 아이덴티티라고.

헨리(제이슨 플레밍)는 날마다 이상한 상상에 빠진다. TV에서 자살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턱 밑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거나, 통근열차에서 자신을 밀치는 여자를 폭행하다가 그녀의 머리를 기차바퀴 아래 밀어넣는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보기에, 헨리는 행복하다. 아름다운 아내, 안정된 직장, 교외의 넓은 집 등 자본주의 사회의 성공 지표를 제대로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날마다 헨리는 상상을 한다.

모든 것은 거짓이다. 아름다운 아내는 출세의 눈앞에서 멈춘 헨리의 평범함을 비웃으며 노골적으로 사장과 놀아나고, 어린 시절부터의 죽마고우는 투자를 한다며 헨리의 돈을 빼돌리고, 넓은 집과 호화로운 생활은 할부금과 대출금으로 겨우 유지된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헨리는 자신의 얼굴에 하얀 마스크가 씌워져 있음을 발견한다. 벗기려 하지만, 피부처럼 얼굴에 딱 붙어 있다. 당황하던 헨리는 가정부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는다. 그녀의 속마음이 들린다. 헨리를 조롱하는 말들,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챙기는 소리. 헨리는 그동안 상상하던 ‘폭력’을 가정부에게 행사한다. 그리고 아내와 사장의 밀회 장소로 가서, 아내를 창문 밖으로 던져버린다. 자신을 앞에서 뒤에서 조롱했던 수많은 이들을 죽여버리고, 헨리는 자신의 얼굴을 되찾는다.

조지 로메로의 <부르져>는 93년 <다크 하프>를 만든 뒤, 10여년 만의 작품이다. 60이 넘은 나이 때문인지, <부르져>는 끈적거리는 고어 대신에, 꽤 깔끔하고 연극적인 스타일로 만들어졌다. 자아를 찾아가는 방식도 공포물보다는 슈퍼 히어로의 탄생 비화처럼 꾸며져 있다. <브루져>는 잘 다듬어졌고 헨리의 캐릭터도 흥미롭지만, 로메로 특유의 투박한 ‘고어’가 사라진 것은 못내 아쉽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