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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노래에 물을 주듯
윤덕원(가수) 2021-03-25

일러스트레이션 EEWHA

‘아무래도 그 노래는 너무 많이 했는데, 이번엔 뺄까?’ 공연을 앞두고 셋리스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으레 이런 대화들이 오간다. 많은 공연을 치르면서 같은 곡을 수도 없이 연주하게 되면 왠지 너무 식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연 때마다 매번 새로운 곡을 발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되려면 공연 횟수가 아주 적거나 아주 많은 곡을 자주 발표해야 할 것이다. 모든 음악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를 포함한 아주 많은 음악가들은 이런 고민에 종종 빠지게 되는데(물론 요즘에는 코로나19로 공연 기회가 많지 않은 것이 더 큰 고민이다), 이것을 해결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원래 연주하던 곡의 편곡이나 연출을 다르게 한다.

2. 다른 음악가의 음악을 커버하여 연주한다.

1번 방법은 참신하면서도 매력적이지만 때때로 새롭게 곡을 만드는 이상의 노력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새로운 접근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도 문제다. 어떤 노래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런 편곡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새로운 편곡보다 원래의 곡을 듣고 싶어 하는 관객이 많을 수도 있다. 그러면 2번 방법은 괜찮은가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일단 다른 음악가의 곡을 재해석하는 것은 역시나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고 보통은 원곡의 아우라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겁 없이 음악을 일로 시작하고서 한참을 그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새로운 곡을 만드는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있는데, 무대에 설 일은 많아지게 되면서 예전 노래들에 너무 의지하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그래도 언젠가부터 조금 편해진 것은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서다. 일설에 따르면 마이클 잭슨은 항상 그의 투어 연주자들에게 음반과 완벽히 똑같은 연주를 원했다고 한다. 관객은 공연에서 그들이 음반에서 들었던 바로 그 음악을 듣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이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정말 녹음된 음반과 똑같이 연주하는것이 최선인가 하는 점에도 백 퍼센트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항상 새로운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너무 조바심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새로움의 주인공일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고. 사실 생각해보면 노래라는 것도 하나의 반복되어 불릴 이야기 아닐까? 그렇다면 항상 새롭기 위해 애쓰지 않더라도 몇번이고 반복해서 말해도 낡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고 꾸준히 부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매번 같은 사람이 듣는 것은 아니며, 있는 줄도 모르고 스쳐 지나가던 노래가 한참 뒤에야 마음에 스며들기도 하니까. 같은 노래를 좀 많이 부르면 뭐 어때. 대신 오랫동안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노래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에는 잘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색한 옷 같은 노래도 있었다. 나의 몸도 마음도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부르는 노래에 걸맞은, 스스로가 던진 노랫말에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산다면 내가 입고 있는 노래가 유행하는 모양은 아니더라도 멋스러울 수도 있을 거다.

노래는 발표하는 순간 음악가의 손을 떠난다는 말에 대해서 나는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같은 노래를 같은 편성으로 부른다고 해도 매번 부를 때마다 그 노래는 같지 않다. 심지어 녹음된 노래조차도 그 곡이 재생되는 맥락이 달라짐에 따라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 한동안 크게 언급되지 않던 곡이 우연한 계기로 ‘역주행’하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거기서 지속적으로 가장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역시 음악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그의 음악과 삶을 존경하게 되는 선배 음악가들을 알고 있다. 그런 존경의 근거는 그가 언젠가 어떤 곡을 발표해서라기보다는 그의 행보에 있다. 반면 모두가 분노할 만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노래를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듣기는 어렵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음악을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그때 나무를 심는 것처럼 음악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느리게 자라는 나무도 있다. 노래도 그렇다. 심자마자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처럼 크게 자란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긴 시간 동안 물을 주면서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뭐 크게 자라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 과정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어렵게 피워낸 꽃이 작고 희미해도 오랜 시간 공들여 키워왔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면 음악하기를 잘했다고 할 수 있겠지.

음악을 본격적으로 할 생각으로 발표했던 밴드의 첫번째 정규 앨범 제목은 《보편적인 노래》다. 지금 와서 보면 다시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의 제목이지만 한편으로는 음악을 하며 언젠가 도달하고자 하는 지향점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 어떤 노래를 더 만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만들어진, 만들어질 노래들에 물을 주듯이 살고 싶다.

<보편적인 노래> _브로콜리너마저

보편적인 노래를 너에게 주고 싶어

이건 너무나 평범해서 더 뻔한 노래

어쩌다 우연히 이 노래를 듣는다 해도

서로 모른 채 지나치는 사람들처럼

그때, 그때의 사소한 기분 같은 건

기억조차 나지 않았을 거야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건 너무 슬퍼

사실 아니라고 해도 난 아직 믿고 싶어

너는 이 노래를 듣고서 그때의 마음을 기억할까

조금은

보편적인 노래가 되어

보편적인 날들이 되어

보편적인 일들이 되어

함께한 시간도 장소도 마음도 기억나지 않는

보편적인 사랑의 노래

보편적인 이별의 노래에

문득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때, 그때의 그때

그렇게 소중했었던 마음이

이젠 지키지 못할 그런 일들로만 남았어

괜찮아 이제는 그냥 잊어버리자

아무리 아니라 생각을 해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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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EEW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