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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뛰어> O.S.T
2002-05-23

`캐쉬`의 고향

이 영화는 사실 지독하게 시니컬하다. 핵심은 누군가가 내뱉는 대사처럼 “캐쉬면 안 되는 게 없네”이다. 이 말은 아무 생각없는 말이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꽤 복잡한 말이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네”가 아니라 “캐쉬면”이다. 캐쉬의 고향은 미국이다. 미국은 이 영화에서 아무 의미없이, 그저 스타일나 스릴의 진원지로 다가오는데, 결국은 아무도 못 말리는 돈지랄만이 이 땅에 남게 된 뿌리이기도 하다.

한국영화에, 거의 모든 음악이 팝송이다. 그것도 한편으로는 모순이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적이다. 도입부부터 버블 팝이 등장한다. 한국의 10대와 미국의 50년대 분위기의 노래가 서로 겹치는가 싶더니 퀸의 <Don’t Stop Me Now>를 배경으로 이번엔 1980년대 초반의 팝 세상이 한국 청소년의 욕망의 구조와 포개진다. 그러나 결국은 아무 생각없는 선택들일 수도 있다. 그냥 가져다 썼거나 갖다붙인 것에 불과하기도 하다. 어쨌든 영화는 그렇게 얼핏, 겹쳐가는 대목을 통해 투박하고 솔직하게 우리 삶이 처해 있는 모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게 된다.

음악은 거의 모두가 선곡인 것이 인상적이다. 록 사운드가 중심이다. 등장하는 노래의 가사가 영화내용과 맞아떨어질 때도 있지만 상관없을 때도 있다. 그것도 그런 대로 성공적이다. 가사야 우리가 알 게 뭐람. 분위기만 맞으면 되지. 어떨 때는 의도적인 선택의 결과로 보이기도 한다. 김형준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라디오 팝 프로그램의 PD였던 그의 음악감독 데뷔작이다. 그는 PD를 하던 시절에도 <산울림 헌정 앨범>을 기획하는 등 의욕적인 ‘과외활동’을 해오던 뮤직 마니아. 현재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DJ로, VJ로, 음악 프로듀서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번 O.S.T에서 그는 386세대 전문 팝 DJ답게 80년대의 클래식 록들에서 새로운 감각의 모던 록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선곡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한철의 프로젝트인 불독 맨션과 K. E. O의 음악을 제외하면 모두 영미 팝에서 가져온 노래들이다. 영화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퀸의 <Don’t Stop Me Now>를 오랜만에 들어보았다. 또 블론디의 <One Way or Another>도. 어렸을 때 ‘겟차겟차겟차’ 하는 대목을 무조건 따라부르곤 했었지. 빌리 아이돌의 <Mony Mony>: 아그들이 돈지랄할 때 테마곡. 구창모가 부른 송골매 버전도 우리 기억엔 있다. 이런 옛날 노래들과 함께 코믹한 리듬을 가진 고릴라즈, 상큼한 덥스타, 사색적인 임브레이스 등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마치 할리우드 청춘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을 듣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때로 깊이 생각한, 그래서 자기 의도대로 끌고 가는 일에 몰두한 영화보다 버블 검처럼 덧없는 양아치영화가 보여주는 게 많은 법이다. 한마디로 <일단 뛰어>도 그 계열에 속한다. 지난번에 소개했던 <복수는 나의 것>과 이 영화는 대조적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버르장머리없는 10대에 관한 흥행영화가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추문의 천민적인 본질을 제법 까놓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은, 역으로 이 영화가 아무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캐쉬의 고향에 계신 돈지랄의 원조 형님들의 철학도 그것이다. 다른 아무 기대없이 돈지랄 잘하면 그게 진실이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