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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리포트]뉴욕의 양성애 아시아 여인
2002-06-17

뉴욕 게이 & 레즈비언 영화제, 마가렛 조의 <악명 높은 C.H.O>가 오프닝 장식동성애자의 권리가 일취월장한 오늘날, 왜 아직도 게이 & 레즈비언 영화제가 필요할까라는 한 평론가의 질문은 아직도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 타인에게도, 나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했음을 실감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우문이다. 제14회 뉴욕 게이 & 레즈비언 영화제(6월6∼16일)의 오프닝작으로 첫선을 보인 재미동포 2세 코미디언, 마가렛 조의 콘서트 필름 <악명 높은 C.H.O>(Notorious C.H.O)는 온갖 금기들과 선입견을 헤쳐가며 ‘나’를 찾은 자의 거칠 것 없는 모습을 당당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콘서트 필름은 70년대의 리처드 프라이어처럼 당대의 유명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공연을 TV용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것. 처음으로 공중파 네트워크에서 아시안 가족을 소재로 했던 TV시트콤이 편견의 벽을 넘지 못하고 실패한 이후, 마약과 알코올중독에 빠졌던 마가렛 조는 자신의 고통스런 경험을 소재로 한 스탠드업 코미디를 통해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미디어가 강요하는 아시아 여성의 이미지나 이민 1세대 부모와의 소통 불가능에서 오는 고통 등 그의 암울한 기억에서 탄생한 유머는 자기 치유뿐 아니라 일반 관객에게도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며 웃음의 힘을 설파했다. 그리고 이 오프 브로드웨이 공연 실황 CD는 그래미상 후보에, 공연을 찍은 다큐멘터리영화, <내가 원하는 나>(1999)는 콘서트 필름으로는 예외적으로 일반 극장에 상영되어 100만달러가 넘는 흥행까지 거두는 성과를 거두었다. <내가 원하는 나>의 제작팀이 다시 모인 2001년, 미국 137개 도시 순회 스탠드업 공연을 찍은 <악명 높은 C.H.O>에서 우리는 70년대의 랩 댄서에게서 모티브를 딴 무대세트, 의상과 음악 등을 배경으로 섹스중독과 과식증을 고민하는 양성애자 마가렛 조를 만날 수 있다.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정체성, 부모 세대와의 갈등, 아시아 여성으로 살아가기 등 그의 지속적인 관심사뿐 아니라 동성애자/이성애자를 아우르는 성정체성에 대한 적나라하고 때로는 비판적인 유머들은 적재적소의 웃음을 자아낸다. 때로는 노골적이고 신랄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그의 성적 농담이 거부감없이 열띤 지지를 받는 것은 밖에서 들여다보는 자의 호기심어린 시선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낸 자의 진솔함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보수적인 아시아사회에서 동성애자로 살아남기를 그린 스탠리 콴 감독의 <란유>로 막을 내린 뉴욕 게이 & 레즈비언 영화제는 결국 그들의 고민이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도 우리에게 영화제가 여전히 의미있음을 보여준다. 때로는 함께 모여 웃고, 울고, 손뼉치며 ‘내가 원하는 나’ 되기의 팍팍함을 공유하고도 싶은 것이다. 뉴욕=옥혜령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