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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납고 귀여운 괴물 이야기 <릴로&스티치>를 만나다
2002-06-17

<릴로&스티치> 올랜도 시사기-이게 정말 디즈니 영화야?플로리다는 하늘도 땅도 바다도 온통 태양의 입맞춤을 과하게 받은 푸른빛이다. 플로리다의 한가운데, 올랜도 디즈니월드가 또 하나의 도시처럼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다. ‘월트 디즈니 월드’라고 씌인 거대한 아치에는 이 마법의 왕국을 세운 월트 디즈니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100년 동안의 마술’이라는 문구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아치를 지나는 순간부터 도로 표지판도 맥도널드 간판도, 심지어 정원의 나무를 다듬은 모양도 미키 마우스 모양이다.디즈니 월드의 테마파크 중 하나인 디즈니-MGM 스튜디오에 자리한 디즈니 플로리다 스튜디오는 93년 처음 세워졌을 당시 테마파크의 볼거리로 애니메이션 제작과정을 눈요기로 관광객에게 전시하던 곳이었다. 그러다가 <제시카와 로저 래빗>의 일부와 다른 애니메이션들의 예고편을 만들게 되면서 규모가 커져 98년에는 <뮬란>을, 2002년에는 <릴로&스티치>를 제작했다.

그리고 이곳 플로리다 스튜디오의 ‘피처 애니메이션 빌딩’에서 전세계 언론을 상대로 디즈니의 야심찬 장편애니메이션 <릴로&스티치>의 월드 프리미어와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이날 인터뷰에 나온 제작자 클라크 스펜서는 “드림웍스는 이제 겨우 시작단계이기 때문에 뭘 해도 사람들은 놀라지 않는다. 하지만 디즈니는 조금만 전통에서 벗어나도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라며 스티치가 안겨줄 충격효과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스티치는 누구지?<릴로&스티치>를 ‘야심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스티치가 디즈니에서 보기 드문 사납고 못생긴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쿠스코? 쿠스코!> <아틀란티스> 등 전통적인 애니메이션에서 벗어나려는 조짐을 보이긴 했지만, 동물도 왕자도 아닌 사나운 외계인이라니. 침을 뱉는가 하면 인상을 찌푸리며 욕으로 추정되는(외계어를 하므로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다)말을 지껄이는 것은 예사이다. 사납게 곤두선 귀와 도마뱀을 연상시키는 재빠른 움직임은 다소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릴로&스티치>는 우주연방의 괴짜 천재 과학자 줌바가 불법적인 유전자 조작을 통해 다리가 6개 달린 실험용 생명체 626호를 만든 것에 대한 재판으로 시작한다. 이 생명체는 불에 타지도 않고 총알로 궤뚫을 수도 없는 강력한 신체와 슈퍼 컴퓨터를 능가하는 두뇌를 지녔지만 파괴 본능만으로 가득하다. 우주연방의 총사령관은 실험용 생명체 626호를 외딴 행성으로 격리시키려 하지만 수송 과정에서 626호는 탈출하고, 지구, 정확히는 하와이 카우아이섬에 불시착한다. 뭔지는 알 수 없지만 ‘동물로 추정되는’ 626호는 기절해 있는 동안 동물보호소에 실려간다. 그곳에서 626호는 자신이 개와 닮았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다리 두개와 더듬이를 숨기고 개 행세를 한다. 그리고 마침 애완동물을 찾아 동물보호소에 온 하와이 소녀 릴로의 집에 간다. 언니와 단둘이 사는 릴로는 626호에 ‘스티치’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릴로와 스티치, 그리고 스티치를 쫓는 외계경찰 사이에 추격전이 벌어진다.

디즈니 왕국에 낯설기로 말하자면 릴로 역시 마찬가지다. 외로워도 슬퍼도 방긋방긋 웃을 줄 아는 디즈니의 다른 소녀들과 달리, 릴로는 부모님을 여의고 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만성적 외로움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녀를 달래주는 것은 엘비스의 노래뿐이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으며, 애완동물로 사온 스티치는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스티치와 릴로는 닮은꼴이며, 스티치가 릴로의 외로움을 이해하는 순간에서야 둘은 ‘오하나(가족)’로 뭉치게 된다. 언젠가부터 스티치의 귀는 더이상 곤두서 있지 않고, 릴로는 언니에게 소리지르기를 멈춘다. 이렇게 이름도 생김새도 성격도 낯선 릴로와 스티치를 관객의 마음에 자리잡게 하기 위한 디즈니가 보인 고심의 흔적은 디즈니 월드의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미키 마우스 모형이 서 있던 자리를 스티치가 대신하는 것은 물론, “어디에서나 스티치를 볼 수 있게” 스티치 캐릭터가 디즈니의 테마파크 이곳저곳에 늘어서 있다. 캐릭터숍에도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릴로와 스티치의 캐릭터 상품들이 늘어서 있는 것은 물론이다. <릴로&스티치>의 한 예고편에서 스티치는 바다에서 고운 목소리로 우아하게 노래하는 인어공주에게 물세례를 퍼붓고, 또 다른 예고편에서는 커다란 홀에서 춤을 추는 미녀와 야수 위로 샹들리에를 떨어뜨린다.

“먼저 들어가겠어요”라고 말하는 미녀의 등 뒤로 음탕한 외계어(?)를 중얼거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렇게 스티치는, 관객에게 친숙한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의 대표적인 장면 속에 불쑥불쑥 끼어드는 것으로 첫선을 보였다. 이 모든 것은 릴로·스티치라는 낯선 이름을 관객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것으로, 이미 1∼2개월 전부터 진행돼온 마케팅 전략이다.디즈니 신화, 다음 세기에도 이어갈까사운드트랙도 유명 가수들이 영화를 위해 특별히 만든 노래를 불렀던 전통적인 디즈니 방식과는 다르게 작업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들이 편곡이 되어, 혹은 원곡 그대로 스크린에서 울려퍼지는데, 엘비스의 노래들은 흥겨움을 더할 뿐 아니라 이야기의 한축을 구성한다. 릴로가 방문을 잠그고 엘비스의 노래에 취해 “나 혼자 죽게 내버려둬!”하고 언니인 나니에게 소리치는 장면이나, 스티치가 엘비스 복장을 하고 나타나서 해변을 시끌벅적하게 만드는 부분은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 관객에게서도 폭소를 자아낸다. 지난해, 가족 관객뿐 아니라 성인 관객을 끌어들인 드림웍스의 괴물이 차지했던 인기를 디즈니의 돌연변이가 되찾을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는 대목이다.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회장인 로이 디즈니가 강조한 것처럼 <릴로&스티치>가 가족과 사랑, 그리고 조건없는 애정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디즈니의 안온한 정원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클라크 스펜서 역시 “대상 연령층은 4살부터 70살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정말 그럴까. 하나는 확실하다. 릴로도 스티치도, 그리고 나니도 더이상 장밋빛 환상으로 가득 찬 동화나라에 살지 않는다. SF적인 설정이지만 그들은 세상사의 고단함과 외로움을 알고 있다. 나니는 릴로를 부양하기 위해 일거리를 찾아야 할 뿐 아니라 릴로를 다른 가정에 입양시키려는 사회복지사와도 싸워야 한다. 변변한 인형 하나 없는데다 왕따를 당하는 릴로는 잠 못 들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천사를 보내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스티치는 우주경찰에 잡혀가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렇게 자기 문제로 허덕이는 주인공은 관객으로 하여금 더 쉽게 마음을 열게 만드는 것이다.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 짐 검사를 하던 공항 직원이 스티치 인형을 보고는 “우리 아들이 이 만화를 보고 싶어 안달이라니까요!”라며 말을 건넨다.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언제나 행복하게 끝나는 디즈니 왕국에서 스티치가 새로운 ‘오하나’로 해피엔딩의 신화를 이어갈 수 있을까, <릴로&스티치>가 한국에서 개봉되는 7월19일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올랜도=이다혜 ariadne@hani.co.kr▶ 감독 크리스 샌더스&딘 데블로이스 인터뷰▶ 톰 슈마커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