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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달굴 블록버스터 8강전
2002-06-29

축구는 영화보다 강했다. 월드컵은 극장가를 텅텅 비웠다. 그러나 피파컵의 향방이 거의 가려진 지금, 극장가는 ‘빼앗긴 초여름’을 만회하기 위한 대작들의 스크린 선점 몸싸움이 뜨겁다.

대형 블록버스터에 강한 건 아무래도 직배사들이다. 20세기 폭스는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 에피소드 2 : 클론의 습격>(7월3일 개봉)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7월 26일 개봉)로 월드컵에 빼앗겼던 관객의 탈환에 나설 예정이다. 콜럼비아는 배리 소넨필드 감독의 <맨 인 블랙 2>(7월12일 개봉)라는 막강한 팀을 입국시켰고, 브에나비스타는 조엘 슈마허 감독의 <배드 컴패니>(7월5일 개봉)와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싸인>(8월 개봉 예정)을 승부수로 삼을 예정이다. 여기에 곽경택 감독의 <챔피언>(28일 개봉), 윤상호 감독의 <아 유 레디?>(7월12일 개봉),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8월2일 개봉) 등 ‘토종 블록버스터’들이 가세한다. 이 정도가 올 여름 극장가의 ‘8강’일 것이다. 이들은 월드컵 8강팀 못지 않은 다채로운 색깔을 지녔다.

축구 보며 ‘스코어 맞추기’에 맛들인 관객들은 올 여름 블록버스터 8강을 두고도 박스 오피스 1위 맞추기 내기를 건다는 얘기도 들린다.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작품은 대체로 <맨 인 블랙 2>이다. 공상과학 블록버스터라면 흔히 웅장한 볼거리나 주인공의 비장함, 또는 고도로 발달한 미래사회에서 인간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 등을 내세우는 데 반해, <맨 인 블랙 2>는 편하게 웃고 즐길 수 있는 공상과학 액션 코미디라는 점이 흥행 예감지수를 높이고 있다.

<맨 인 블랙 2>는 외계인의 지구 출입을 관리하는 엠아이비 조직의 베테랑 요원 제이(윌 스미스)와 케이(토미 리 존스)가 다시 뭉쳐 엉뚱하고 기발한 방식으로 지구 안에 들어와 있는 외계인을 적발해낸다는 이야기. 솔방울 눈 외계인, 라커룸 안에 존재하는 외계공간, 지하철에 거주하는 미확인 생명체 등이 2편에 새로 선뵈는 아이디어들이다. 마이클 잭슨이 외계인으로 깜짝 출연한 것도 화제가 됐다.

좀더 본격적인 공상과학영화를 즐기는 팬들이라면, 예컨대 <블레이드 러너>나 <공각기동대>가 그려낸 디스토피아의 묵시록에 빠져들었던 마니아라면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가장 기다려질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의 원작 소설 작가인 필립 딕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다. 돌연변이로 인해 예지능력을 지니게 된 세 예지자들의 예언을 종합해 범행이 벌어지기 전에 범행자를 미리 구금함으로써 범죄를 방지하는 시스템이 구축된 가까운 미래사회가 영화의 배경이다. 이 기괴한 시스템을 창설해낸 장본인인 범죄예방국장 앤더턴(톰 크루즈)은 어느날 자신조차 이 시스템으로부터 단속의 대상이 됐음을 깨닫고 필사의 탈출을 시도한다.

한국 축구팀이 ‘붉은 악마’라는 열두 번째 선수의 어깨를 딛고 4강까지 올랐듯, 극장가에서도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올 여름을 장악할 거라는 예측도 만만치 않다. 토종의 힘을 믿는 사람들은 <챔피언>이나 <성냥팔이…>가 ‘결승’까지 무난히 갈 거라고 본다.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는 한국영화사상 최대 규모의 예산(순제작비 90억원)을 투입하고, 핸드폰 광고모델로 스타덤에 오른 임은경(19)씨를 주연으로 캐스팅하는 등 숱한 화제를 뿌린 대작이다. 안데르센의 동화에서는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불에 의지해 추위를 이겨내려다 결국 얼어죽지만, 영화에선 컴퓨터 게임 안에서 성냥팔이 소녀가 얼어죽도록 내버려두려는 악의 세력인 ‘시스템’과, 이에 맞서 성냥팔이 소녀를 구하려는 세력이 맞선다. 두 세력이 충돌하면서 벌이는 싸움은 할리우드식 액션과 홍콩식 액션 등 “액션의 모듬회”로 불리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무성한 소문 그대로 엄청난 살상과 폭력장면이 등장하지만,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일로 설정돼 있어 실제 그렇게 잔인하게 비치지는 않는다. 뜻밖에 전반적으로 이야기가 따뜻하고 유머가 풍부하다는 게 제작사의 설명이다.

나머지 작품들도 전력이 만만치 않다. 다스 베이다의 과거가 궁금한 마니아들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2>를 놓칠 수 없을 것이고, <식스센스>나 <디아더스>같은 미스터리 스릴러에 매료됐던 이들은 <싸인>이 최고 기대작일 것이다. <아 유 레디?>는 한국의 컴퓨터 그래픽과 블록버스터 미니어처 기술을 바탕으로 “우리만의 정서에 딱 들어맞는 모험과 드라마”임을 강조한다.

이렇게 훑어봤을 때 올 여름 극장가의 최강자는 누굴까. 싱겁지만, 정답은 늘 자기가 선택한 영화다. 1천명쯤만 본 작품이더라도 자기 취향에 맞기만 한다면 800만명이 몰려든 영화가 부러울 게 없지 않을까.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