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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잔상 거리스크린 부천에 옮겨담아
2002-07-05

월드컵에서 확인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터뜨리는 눈물과 함성은 ‘지친 삶의 엔돌핀’이었다. 아직도 부족하다고? 11일부터 20일까지 열흘간 부천에 가면 영화와 공연, 그리고 함께 밤새우는 사람들이 있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개막작과 부천초이스에서 보듯이 대중성 있는 작품들을 고르는 한편 작가들을 재발견하는 특별전을 대거 마련했다. 대중영화제와 시네마테크 영화제 사이에서 균형을 취한 것이다.

영화제 대표선수들

11일 오후 5시 부천시민회관에서 열리는 개막식에 이어 처음으로 관객들과 만나는 개막작은 미국·영국·독일 합작의 <슈팅 라이크 베컴>이다. 베컴의 팬이자 축구선수를 꿈꾸는 18살 인도계 제스와 영국소녀 줄스는 모두 집안, 특히 엄마의 심한 반대에 부딪친다. 두 소녀가 꿈을 찾아가는 과정에 적절한 로맨스와 영국의 인종차별 문제까지 골고루 양념을 뿌린 영화다.

부천 초이스 장편 부문의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신작 <검은 물 밑에서…>는 6월27일부터 시작된 예매에서 가장 빨리 매진되는 기록을 남기며 관심을 모은 작품이다. 남편과 이혼조정중인 요시미가 딸과 함께 이사한 아파트에 몇달전 물탱크에서 실종됐던 5살 소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버림받은 아이들의 슬픈 이야기가 가슴에 남지만, 아이들 문제에 대해 여성의 모성애만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분위기만으로 사람들을 오싹하게 만드는 실력은 <링>에 이어 여전하다. 영화제 이후 개봉예정인 타이의 옥사이드 팡, 대니 팡 형제 감독이 만든 <디 아이>와 함께 아시아 공포영화의 힘을 맛볼 수 있는 기회다.

부천영화제의 간판스타인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엔 진지한 드라마들이 많다. <짖어대는 여자>엔 어느날 갑자기 개처럼 짖어대기만 하는 아내가 등장한다.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아내 못지 않게, 남편과 그 주변 사람들 역시 불안한 존재다. 타인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유머스럽지만 만만치 않은 깊이의 생각을 던져준다.

개막작의 대중적 취향에 비해 폐막작은 영화팬들을 위한 작품. 아키 카우리스마키, 빅토르 에리스, 베르너 헤어조크. 빔 벤더스, 짐 자무시, 스파이크 리, 첸 카이거 등 세계적 감독 7명이 ‘시간’을 주제로 10분씩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텐 미니츠-트럼펫>이 그 주인공이다. 한국의 안병기 감독의 신작 <폰>도 폐막작으로 함께 선정됐다.

부천 특별선수들

부천의 열정은 심야상영과 씨네 록 나이트에서 나온다. 어어부 프로젝트, 이상은, 레이지본, 롤러코스터, 3호선 버터플라이 등의 공연이 영화와 함께 열린다. 그 중에서도 오는 8월7일 일반에도 개봉될 록뮤지컬 <헤드윅과 앵그리인치>는 놓치기 아쉬운 작품. 록밴드의 리더인 트랜스젠더 헤드윅은 동독에서 태어나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성전환수술을 택했지만 ‘흉한’ 상처만 남았다. 코믹한 듯 하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반쪽을 갈망하는 인간의 모습과 결국 자신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하게 되는 주인공의 여정이 헤드윅의 노래를 통해 가슴아프게 전달된다. <브리트니 베이비, 원 모어 타임>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열혈팬이자 게이인 로버트의 이상한 여행을 그렸다. “진짜 브리트니를 만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기록영화 감독의 말에 넘어가 함께 여행하며 스피어스의 역할을 하게 된다. 실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뮤직비디오를 그대로 따온 장면들이 흥겹다. 두 동성애자가 얼결에 관중들 앞에서 미국국가를 부르는 장면은 엄숙주의에 대한 유쾌한 조롱으로 보인다. 1997~99년까지 열렸던 여성 로커들의 투어공연을 담은 <릴리스 페어>는 페미니즘을 떠나 여성들만의 넘치는 힘과 우애를 느끼게 한다.

전설의 선수들

문화원 세대들에겐 전설적인, 독일의 감독 베르너 헤어초크의 회고전이 있다. 자신보다 못한 난쟁이들을 괴롭히는 또다른 난쟁이들을 통해 폭력적인 인류의 모습을 그린 <난쟁이도 작게 시작했다>(1970) 등 5편의 극영화와 5편의 다큐멘타리, 헤어초크에 관한 다큐멘타리 2편이 상영된다. 극한상황에서 극단적 목표를 추구해가는 광기어린 인물은 감독의 페르소나이기도 했지만 그가 말하는 개인, 존재, 구원의 문제는 이 시대 보편적인 것이기도 하다. 예매에서 열렬한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은 미이케 다카시의 특별전이다. 비디오 출시를 목표로 만들어진 데서 출발해 일본에서 하나의 독자적 장르를 이룬 V 시네마의 기수다. 엽기적인 상황, 강렬한 폭력묘사와 황당한 유머의‘작가’ 미이케를 <아지테이터> 등 7편의 영화를 통해 만나본다. <반지의 제왕>으로 대중적 지명도까지 획득한 오스트레일리아 피터 잭슨 감독의 특별전은 유머러스하고도 기발한 도전과 장르 비틀기로 ‘컬트 감독’으로 추앙받던 초·중기 작품 7편을 선 보인다. ‘가장 피터 잭슨 답지 않은 영화’로도 불리지만 팬터지 작가로서 그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화제작 <천상의 피조물>도 막판에 합류했다.

부천에선 단편을 포함해 173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선택의 기준은 하나, 낯선 감독과 배우를 두려워말라. 이번 영화제의 주제인 ‘사랑·환상·모험’이 말해주듯 사랑과 환상은 ‘모험’하는 자의 것이리니. 19일까지 예매 가능. www.pifan.com,www.ticketpark.com,1588-1555.

김영희 기자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