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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트라즈 탈출> <만주인 지원병> 등의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 타계
2002-07-15

영광과 침체의 계곡을 지나, 이제 잠들다90년대 들어 <닥터 모로의 DNA> <로닌> <레인디어게임> 등을 연출한 존 프랑켄하이머가 지난 7월6일 72살 일기로 세상을 떴다. 60년대 <만주인 지원병>(1962) <알카트라즈 탈출>(1962) <트레인>(1964) (1964) <세컨드>(1966) <그랑프리>(1966) 등 다양한 수작을 연출한 프랑켄하이머는 시드니 루멧, 샘 페킨파, 델버트 만, 로버트 멀리간, 노먼 주이슨 등과 더불어 TV 연출가로 시작해 영화감독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 70∼80년대 알코올중독으로 긴 슬럼프에 빠졌던 프랑켄하이머는 90년대 들어 <어게인스트 월> <버닝 시즌> <앤더슨빌> <조지 월리스> 등 4편의 TV영화로 에미 감독상을 받으며 전성기의 에너지를 재가동했다. 올해 5월부터 <HBO>에서 선보인 <전쟁으로 가는 길>은 베트남전을 확대시키려는 존슨 행정부의 모습을 그린 드라마로, 앞선 TV영화들만큼 호평을 받았다.1930년 뉴욕에서 증권거래인의 아들로 태어난 프랑켄하이머는 아일랜드, 독일, 유대인의 피가 섞인 사람. 대학에서 연극을 했고 한국전 동안 공군에서 홍보영화를 찍었던 그는 <CBS>에서 조감독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처음에 그가 맡았던 프로그램은 뉴스와 기상예보 같은 것이었고 <사람 대 사람> <당신 거기 있군요> 등의 쇼를 연출했다. 그는 1954년부터 60년까지 152편의 TV드라마를 연출했다. 2주에 1편씩 연출한 셈. 특히 인기 프로그램 <플레이하우스90>에서 그가 연출한 작품 <와인과 장미의 나날>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등은 화제가 됐다.

처음 장편극영화를 만든 것은 1957년. 데뷔작 <영 스트레인저>는 아버지와 거리감을 느끼는 10대 소년의 이야기다. 프랑켄하이머의 최고작으로 손꼽히는 <만주인 지원병>은 한국전 때 중국군에 포로로 잡힌 미국인이 세뇌당하는 과정을 스릴러 스타일로 연출한 작품. 영화에서 카메라를 360도 회전시켜 미군 포로들의 환상과 현실을 교차시킨 장면은 당시로선 혁신적인 카메라 이동으로 손꼽힌다. 버트 랭커스터 주연의 , 록 허드슨 주연의 <세컨드>, 토머스 해리스 소설이 원작인 <블랙 선데이> 등 정치스릴러에 관심이 많았던 프랑켄하이머는 “나는 늘 겉보기와 다른 캐릭터를 다루는 데 매혹됐다. <만주인 지원병>이나, 내가 만든 TV프로그램이나, 존 르 카레나 리처드 콘돈의 소설이나 마찬가지 이유로 날 매혹시켰다”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한 적이 있다.

그의 생애를 언급하면서 1968년 상원의원 로버트 케네디 암살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케네디는 생의 마지막날 밤을 프랑켄하이머의 집에서 보냈다. 절친한 친구였던 프랑켄하이머는 그를 말리부의 자기 집에서 재우고 다음날 LA 앰배서더호텔까지 태워주고 돌아왔다. 그때 암살사건이 있었고 그날 이후 프랑켄하이머는 의욕도, 관심도 잃어버린 채 긴 침체기에 들어갔다. 프랑스에서 5년을 보내고 돌아왔지만 술에 찌든 그는 더이상 젊은 천재감독이 아니었다. 그의 경력은 1994년 <HBO>의 TV영화 <어게인스트 월>이 에미상을 받기 전까지 악화일로였다. 그는 90년대 들어 4번의 에미상을 수상했지만 극장용 영화로는 옛 영광을 되찾지 못했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사망을 알리는 기사에서 프랑켄하이머의 오랜 친구인 아카데미 회장 프랭크 피어슨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영화를 보는 시각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의 시각스타일은 에너지가 넘쳐흘렀고 사물을 우리 앞에 클로즈업시켰다. 프랑켄하이머의 영화가 나오면서 영화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TV영화 <조지 월리스>에 출연했던 배우 게리 시니즈는 “그는 영화 만들기를 사랑했다. 영화 만들기는 그에게 엄청난 에너지와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말년의 그를 만났지만 한번도 전성기가 지난 사람과 일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20여년간 심각한 정체를 경험한 프랑켄하이머는 98년 <로닌>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여긴 쉽게 잊는 동네다. 한껏 올라갔다 쓰레기처럼 내버려진다”고 말했다. 아마 앞으로도 프랑켄하이머의 이름은 60년대 등장한 새로운 미국감독으로 기억될 것이다.남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