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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에 홀리는 즐거움
2001-05-15

LA통신

크리스토퍼 놀런의 <메멘토>, 평론가들의 지지 속 관객몰이에도 성공

똑똑하면서도 스릴있는, 관객으로 하여금 스크린 속의 퍼즐에 빠져들어가게 하는, 한마디로 <유주얼 서스펙트> 같은, 그런 미국영화를 기다리는 팬들에게 최근 몇달은 무척 지루한 시간이었다. <트래픽> <와호장룡>은 ‘발굴’의 기쁨을 안겨주기에는 너무 거장 감독의 작품이었고, <유 캔 카운트 온 미>가 저예산 독립영화로 큰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관객과의 머리싸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영국 출신 크리스토퍼 놀런의 <메멘토>는 이런 관객의 갈증을 달래주는 영화였다.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각본상으로 주목받았고 토론토영화제에서도 갈채받은 이 영화는 비평가들의 격찬 속에 성공적인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3월16일 처음 개봉됐을 때만 해도 <메멘토>는 평론가들만이 열광하다가 조용히 사라질 영화로 보였다. 15분 전까지의 일을 기억할 수 없는 ‘단기 기억상실증’을 겪는 주인공(의 가이 피어스)이 강간 뒤 살인당한 아내(<매트릭스>의 캐리 앤 모스)의 범인을 찾기 위해 기억의 징표로 폴라로이드 사진과 메모와 노트, 그리고 몸에 문신까지를 동원한다는 줄거리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관객을 주인공의 기억의 경험과 동일하게 만들기 위해, 즉 이야기의 끝에서 거슬러올라가는 난해한 이야기구조에다가 <차이나타운>이나 <마라톤 맨>을 연상케 하는 누아르적인 우울함이 깔린 이 영화에 대해 극장주들은 “너무 똑똑해서…”라며 거절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10개 극장에서 개봉된 영화가 “새로운 심리적 스릴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들으며 평론가들의 95%에 가까운 지지를 얻고 잇따라 ‘올해 최고의 필름 중 하나’로 꼽히면서 제작사는 토드 솔론즈의 <해피니스>를 성공시킨 바 있는 베테랑 마케팅 전문가를 동원, 대학가에 집중 홍보하고 영화의 소재로 인터랙티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웹사이트(www.otnemem.com)를 여는 등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그 결과 영화는 점차 개봉관 수를 늘려 상영 7주째인 현재는 400여개 극장으로 늘었고 앞으로도 더 추가될 예정이다. 500만달러 예산의 영화는 현재 1300만달러의 수익을 올려 박스오피스 9위에 올라 있다.

데뷔작 에 이은 두 번째 작품으로 명작 <빅 슬립>이나 <차이나타운>과 비교되는 영광을 누린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에게는 여지없이 메이저 스투디오의 따뜻한 손길이 날아들었다. 동생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든 그는 4월 말 워너브러더스와 알 파치노 주연의 5천만달러짜리 영화 <불면증>을 찍기로 계약하며 주류 영화계로 뛰어들었다.

LA=이윤정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