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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극장가] 반부시 재난극 vs 아슬아슬 예술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그 첫 주자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재난 블록버스터 <투모로우>가 4일 개봉한다. 전작 <고질라>나 <패트리어트: 늪 속의 여우>에서 보듯 이 감독은 드라마 연출력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사이즈와 스케일로 화면을 휘몰아치게 하는 게 주특기이다. 기상이변으로 재앙이 닥친 상태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 간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빼곤, 이렇다할 줄거리 없이 미국이 자연재해로 쑥대밭이 되는 장면을 묵시록처럼 연출한다. 미국에서 교토의정서를 탈퇴한 부시를 겨냥해 이 영화를 반부시 영화로 활용할 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일본영화 <완전한 사육>은 장르에서나 스케일에서나 <투모로우>와 정반대이다. 홍보물에는 ‘에로 멜로’라고 적혀있지만 예술영화에 가깝고 등장인물은 주인공 남녀 포함해 10명을 넘지 않는다. 보는 이에따라 남성의 위험한 성 판타지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할지도 모르지만, ‘반(半)’ 포르노로 시작해 ‘반(反)’ 포르노가 돼어가는 일본 로망포르노 장르의 전통을 읽을 수 있다. 같은 주말 개봉작 가운데 감독이 코인 형제라는 이유로 기대를 모으는 <레이디킬러>는 역설이나 페이소스 모두 코인 형제의 다른 영화들에 못 미친다.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과 곽재용 감독이 다시 만났다는 점에서 주목을 끄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도 아쉽기는 마찬가지.

주말 개봉작 한겨레 리뷰 <내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감독에 대한 관객의 기대치가 높아졌을 때, 보란 듯이 그 기대를 져버리는 영화들이 있다. 윤제균 감독의 <낭만자객>, 정초신 감독의 <남남북녀> 같은 영화가 그랬다. 곽재용 감독의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가 그 뒤를 이을 것같다면 속단일까.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을 잇따라 흥행시킨 곽재용 감독은 연령대를 불문하고 관객들 마음 속에 향수처럼 남아있는 신파적 감성을 적절하게 끄집어내는 솜씨가 있었다. 그런데 <내 여자…>에서는 캐릭터, 드라마 모두 휘발한 상태에서 신파적 연출이 두서없이 남발된다.

여자경찰관 경진(전지현)이 고교 교사 명우(장혁)를 소매치기로 잘못 알고 체포했다가 그 인연으로 둘이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무난할 수 있다. 여자는 불의를 못 참는 다혈질의 경찰이고, 남자는 순하고 착하다는 정도를 빼면 이 두 캐릭터에 살을 입히는 게 없다. 영화의 3분의 2쯤에서 남자가 죽고 그 다음부턴 줄곧 남자를 그리워하는 여자, 전지현을 의상과 무대를 바꿔가며 비추면서 관객에게 그 슬픔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

다혈질 여경찰 순둥이 남 교사 그것만으로 ‘끝’

명우가 남긴 “난 죽어서 바람이 될 거야, 바람이 불면 내가 온 줄 알아”라는 말은 분명 유치하다. 사실 사랑을 그리며 울고 싶은 신파적 감성은 유치한 것이다. 그걸 노리고 누아르와 멜로의 이미지만 섞어 음악의 배경으로 까는 뮤직비디오들이 유행한 지도 오래다. <내 여자…>는 그런 뮤직비디오 여러 편을 이어붙인 듯한데, 그게 대동소이하다. 명우는 죽은 뒤 진짜로 바람이 돼 경진 곁에 수도 없이 불어닥치고, 자살하려는 경진을 구해주기까지 한다. 음악도 대동소이하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스테이> 두 곡의 올드 팝과 일본 엑스재팬의 <티어즈>를 수시로 반복한다. 이쯤 되면 유치함의 남발이자 착취로 보인다. 와중에 경진은 흉악범들을 체포하면서, 차량폭발로 솟아오르는 불길을 등 뒤로 한 채 총들고 긴 머리를 휘날리는 홍콩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 전지현 팬에 대한 서비스일 텐데, 전후 맥락에 대한 고려는 없다.

아마도, 제작진은 ‘구태여 다듬을 필요가 뭐 있냐, 멜로의 정수만 뽑아 단순명쾌하게 가자’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 자세한 의도는 알기 힘들지만 영화만 액면 그대로 놓고 보면 안이하고, 무성의하고, 사줄 게 없다. 3일 개봉.

코엔형제의 <레이디 킬러>

세상을 떠난 남편(의 초상화)과 대화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유일한 삶의 낙인 시골 노파 먼슨 부인의 집에 한 남자가 세를 들어온다. 자신을 문학박사로 소개하는 G.H. 도어(톰 행크스)는 지적이고 고상한 말투로 노파를 현혹시키지만 그의 실체는 도둑. 이 집의 지하실에서 인근 카지노까지 땅굴을 파 금고를 털려는 계획으로 그는 나름의 ‘드림팀’을 꾸린다. 아마추어 클래식 음악연주단을 가장한 이들의 작전은 처음부터 삐걱거리고 결정적으로 먼슨 부인에게 도둑 짓을 들키면서 도어 박사 일행이 탄 배는 산을 향해 노를 저어간다.

머리 달리는 5인조, 할머니한테 딱걸렸네

감독과 제작자로 각각의 명함을 팠지만 언제나 공동작업을 해온 조엘 코인·에단 코인 형제의 영화들은 넓은 의미에서 범죄코미디에 속한다. <아리조나 유괴사건>처럼 뒤집어지는 웃음 주변에 어수룩한 범죄를 깔거나, <파고>처럼 사람을 갈아죽이는 잔인함 곁에 어처구니 없는 실소를 배치하는 등 모양과 이음새는 달라도 범죄와 코미디는 이들의 영화에서 중심요소다. 1955년 제작됐던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레이디 킬러>는 이들 형제 감독의 작품 리스트 가운데서도 ‘범죄 코미디’라는 장르에 가장 걸맞을 만한 영화다. 풀어 말하면 범죄극들이 자주 차용하는 전형적인 설정(은행강도)과 코미디가 즐기는 전형적인 인물들(지능이 모자라는)이 등장한다. 좋게 말하면 어떤 전작들보다 적재적소에서 사람들을 웃기고 나쁘게 말하면 코인 형제답지 않게 평면적이다.

허허로운 웃음·뿅망치급 반전‘코미디 컴백’반갑다, 톰 행크스

에드가 앨런 포우 전문가인 도어 박사는 신문광고를 통해 4명의 동료들을 꾸린다. 설사병에 시달리는 폭파전문가와 베트콩 출신의 땅굴전문가, 머리는 장식품처럼 달고 다니는 힘전문가와 목적장소인 카지노에 근무한다는 것 외에 아무런 전문성도 없는 흑인 청년이 그들. 어찌저찌해서 가까스로 이들은 돈을 훔쳐내는 데 성공하지만 바른생활 노파인 먼슨부인에게 들통이 나자 예정에 없던 먼슨 부인 제거작전이 발효된다. <레이디 킬러>라는 제목이 나온 사연이다. 문제의 출발지와 기착지가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레이디 킬러>는 여느 범죄극, 또는 범죄 코미디와 갈라지는 지점을 가지고 있지만 ‘코인 표’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 분기점은 그 표지가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인다.

애니메이션에나 등장하면 딱 어울릴 것같은 캐릭터들로 손쉽게 관객의 웃음을 끌어내려는 방식이 코인 표를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실망스러울 것이다. 여기에 뒷통수를 후려치는 강도가 ‘뿅망치’ 정도도 되지 않는 반전에 해당하는 등장인물들의 잇따른 죽음도 실없는 농담처럼 허허롭게 느껴질 뿐이다. 반가운 건 코미디 동네에서 성장해 근면성실 동네로 이사가 점잖은 모범시민으로만 지내오던 톰 행크스가 오랫만에 돌아와 펼치는 코믹 악역 연기. 배경이 되는 미국 남부의 끈끈한 분위기를 실어나르는 블루스 선율도 범상한 대사들보다 훨씬 매혹적이다. 3일 개봉.

골방속 욕망, 안쓰럽고 모호하고 <완전한 사육>

<완전한 사육>은 40대 남자가 여고생을 납치해 자기 집에 감금해 놓고 자기 여자로 만들려고 하는 이야기이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지만, 설정부터가 포르노적 성격이 강하고 영화도 굳이 이를 부인하려고 하지 않는다. 표현수위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여고생을 향한 40대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이렇다할 핑계를 대지 않는다. 자칫 불쾌하게 보일 수 있는 여지를 방치해 놓은 채 남녀의 행동과 심리에 미묘한 변화를 낚아채가면서 포르노를 훌쩍 벗어난다.

여고생 하루카(후카우미 리에)는 말 없는 성격에 친구가 거의 없다. 일찍부터 아버지없이 어머니와 남동생과 살았다. 어느날 낮에 하늘에서 유에프오를 보았고, 밤에 다시 그걸 보러 갔다가 40대 회사원인 스미카와(히다 야스히토)에게 납치된다. 스미카와는 하루카를 집에 가두어 놓고 요모조모 살피며 매일같이 몸무게를 재고, 출근할 때는 꽁꽁 묶어 놓는다. 성관계를 갖고 싶어하지만 강제로 할 생각까지는 없다. 보물단지처럼 애지중지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한다. 납치는 했지만 실제는 겁많고 소심하다. 제목에서 풍기는 사도매저키즘적인 냄새는 이 영화엔 거의 없다.

문제는 여자다. 처음엔 몇차례 탈출을 시도하더니 그걸 접고 좀 더 지나선 스스로 달아날 기회가 생겼는데도 그러질 않는다. 어느 순간 스스로 먼저 성관계를 허락한다. 여자가 아버지 없이 자랐다는 설정이 힌트가 될 수도 있다.(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을 ‘파파’라고 부를 걸 요구하고, 나중에 여자는 거기에 따른다.) 납치된 이가 납치범에게 동화되는 스톡홀름 신드롬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가 묘사하는 여자의 심리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여자의 마음을 사려고 안절부절하는 남자가 코믹하게 보이고 여자가 거기에 반응을 보일 때, 이 영화는 <감각의 제국>이나 로망포르노의 걸작으로 불리는 구로사와 다츠미 감독의 <빨간 머리 여자>처럼 사회와 담쌓고 골방에 틀어박히려는 남녀의 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회적 관계 안에서 욕망을 풀어내지 못하는 이들의 황폐해진 내면이 드러날 때 오는 안쓰러움이 있다.

여고생 납치 길들이려는 중년남 실화 바탕 포르노 경계 넘나들어

하지만 영화는 그 안쓰러움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빨간 머리 여자>처럼 남성의 공격적 성 판타지를 끌어와 포르노처럼 시작해선 그와 전혀 다른, 남녀의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모습은 로망포르노의 틀을 의도적으로 차용한 듯하다. 그런데 남자의 성욕에 여자가 일찌감치 포획돼 남자보다 더 탐닉하는 <빨간 머리 여자>와 달리 이 영화에서 여자는 포획되지 않는다. “당신이 시켜서 한 거에요”, “이게 그렇게 좋아요”같은 여자의 말은, 남자와의 심리적 거리감을 드러낸다.

성관계는 가지지만 남자의 여자를 향한 성욕은, 여자가 남자에게 원하는 것과 어긋나 있거나 아니면 매우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의 욕구를 성욕으로 단순화해 일치시키려는 남자의 판타지는 성사되지 않는다. 영화는 둘이 성관계를 가질 때, 서로 전혀 다른 행위를 하고 있는 것같은 느낌을 잡아챈다. 경찰이 찾아왔을 때, 남자는 도피나 저항의 엄두조차 내지 않고 무기력하게 잡혀간다. 남자의 성판타지에 부합하느냐 마느냐는 면에서, 포르노와의 경계선을 오가는 긴장감을 자아내면서 쉽게 설명되지 않는 욕망의 모호함을 드러내는 독특한 영화다. 니사야마 요이치 감독. 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