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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스크린과 CGI로 만들어낸 잿빛 도시의 영웅담, <스카이 캡틴 앤 월드 오브 투모로우>
김혜리 2004-06-10

눈길 닿는 곳이면 어디나 빈틈없이 잿빛으로 뒤덮인 메트로폴리스. 마치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20세기 소년>에서 걸어나온 듯한 거대 킬러 로봇들이 지축을 울리며 가뜩이나 우울한 도시 풍경을 더욱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스크린 위의 붉은 기운이라고는 오직 한창때 로렌 바콜처럼 차려입은 기네스 팰트로의 입술뿐. 개봉에 앞서 공개된 <스카이 캡틴 앤 월드 오브 투모로우>의 일부 장면은 당혹스럽고 흥미진진하다. 이것은 애니메이션인가? 아니면 프리츠 랑이 부활해서 액션블록버스터를 만들기라도 했나? 또, 케리 콘랜이라는 감독은 대체 누구인가?

구형의 전투기와 거대 로봇이 공존하는 <스카이 캡틴…>의 무대는 1939년. <크로니클>의 민완기자 폴리 퍼킨스(기네스 팰트로)는 전세계의 일급 과학자들이 동시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아니나다를까, 세계 최고 두뇌들의 집단 실종 뒤에는 지구를 파괴하려는 과대망상증에 걸린 과학자 닥터 토텐코프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폴리는 옛 연인이자 최고의 파일럿인 스카이 캡틴(주드 로)과 힘을 합쳐 분연히 지구 방어에 나서고, 전원 여성으로 편성된 영국의 수륙양용 부대 지휘관 프랭키 쿡(안젤리나 졸리)과 테크놀로지 천재 덱스(지오바니 리비시)가 믿음직한 조력자로 가세한다.

특별한 것은 스토리가 아니다. <스카이 캡틴…>은 거의 영화 전체 분량을 블루 스크린 앞에서 촬영하고 살아 있는 배우 외의 모든 요소를 사후에 디지털로 그려넣는 영화다. 영화 경험이 전혀 없던 신인감독 케리 콘랜과 이 영화의 프로덕션디자인을 맡은 케빈 콘랜 형제는 제작자 존 애브넛에게 4년간 개인용 매킨토시로 만든 <스카이 캡틴…>의 개요 애니메이션을 보냈고 7천만달러짜리 영화의 오케이 사인을 얻어냈다. 콘랜은 이 영화에 필요한 CGI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었을 뿐 아니라 9개월의 긴 리허설 기간 동안 배우들의 대사 리딩에 맞추어 영화 전체를 스케치한 애니매틱을 만들어 대령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배우들도 블루 스크린 연기의 지루함을 섣불리 불평할 수 없었으리라. <스카이 캡틴…>이 의의있는 시도로 기억될지 장인의 데뷔작으로 기억될지는, 이 정열적 신인이 사랑하는 문화적 기호를 종합했다는 시나리오의 성숙도에 달려 있는 듯하다.

김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