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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콜라] “나도 게이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쌔고쌘' 여친도 아닌 든든한 남친도 아닌 특별한 남자친구를 꿈꾸는 여성들의 욕망. “니 친구 중에 혹시 게이 없어”

남자와 여자가 꿈꾸는 관계의 차이를 그린 소설 <체리브라썸>(이청해 지음)의 여자 주인공 동희는 오랫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 도현에게 게이 친구를 소개시켜달라고 말한다. 결혼을 앞둔 이성애자 여자가 동성애자 남자를 말하는 게이를 친구로 사귀고 싶다는 말에 도현은 아연해 한다. “쌔고 쌘” 여자친구를 마다하고 “칙칙하게 게이를 찾는” 이유에 대해 동희는 말한다. “동성의 친구도 중요하지만 이성의 친구가 반드시 필요해. 만약 부부(애인) 간의 불화를 의논한다고 쳐봐. 동성의 친구는 이해에 한계가 있어. 상대방의 입장을 잘 모른다구. 자기도 같은 성이니까.”

게이 친구. 동성 친구도 애인도 아닌 새로운 친구 유형에 대한 관심이 이성애자 여성들 사이에서 점차 늘어나고 있다. 동희 뿐 아니라 많은 젊은 여성들에게 영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에서 주인공 여자의 막무가내 결혼작전을 지도편달하고 결국 혼자남은 여자를 다독여주는 게이 친구는 “나도 한명쯤 사귀었으면”하는 친구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매력적인 게이 친구가 등장한 지는 제법 됐다. 젊은 여성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케이블 텔레비전 드라마 <섹스 앤 시티>에서 순한 게이친구 스탠포드는 주인공 캐리가 연애에 실패하고 침울해 할 때마다 파티에 함께 데려가 기분전환을 도와주는 선의를 발휘한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케이블 드라마 <윌 앤 그레이스>에서 한 지붕에 사는 동성애자 남성 윌과 이성애자 여성 그레이스는, 동거를 하면서도 성적인 불편함이나 긴장을 느낄 필요가 없는 남자친구 관계에 대한 여성들의 호기심과 선망에 모락모락 불을 지피고 있다.

괜찮은 게이 친구의 등장은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도 낯설지 않다. 몇달 전 종영한 드라마 <완전한 사랑>이 젊은 여성의 눈길을 잡은 사연은 죽어가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절절한 사모곡이 아니라 무모한 짝사랑을 하는 지나에게 따뜻하면서도 어른스러운 조언자 역할을 하는 게이 친구의 존재였다. 방영 당시 이 드라마의 게시판에는 “나도 저런 남자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찬사와 부러움의 글들이 자주 올라왔다.

물론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게이 친구의 모습과 이들에 대한 여성들의 호감이 판타지라는 비판도 있다. 여자라고 모두 여성의식이 높거나 섬세함을 지니고 있지 않듯이 창조적인 직업에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있으며 여자보다 더 여자같은 감성과 깊은 사려를 품고 있는 게이도 극히 일부이거나 미디어에서 조작한 이미지라는 지적이다.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이해없이 게이 판타지만으로 게이 남성들을 쫓아다니는 여성들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페그 헤그(fag-hag)’라는 속어가 쓰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젊은 이성애자 여성들에게 늘어나고 있는 게이 친구를 단지 멋이나 유행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이유들이 있다. 게이 친구를 가진 여성들은 “성적 긴장없이 남성의 시선으로 나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으면서도, 보통의 남자들과는 나누기 힘든 이야기들을 편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동성애 심리학>을 쓴 심리학자 윤가현 교수(전남대 심리학)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전통적 성역할이 허물어지고 있는 시대를 반영하는 새로운 친구 유형”이며 “이성애자 여성들이 남성보다 게이 친구에 더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는 현상은 변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남성들의 의식이나 관습에 대한 거부감의 한 징후로도 읽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설사 판타지라고 해도 맘좋은 게이 친구 한명쯤 곁에 있었으면 하는 여성들의 욕망이 허영심이나 겉멋만은 아닌 시대가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