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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가 와인이라면 <꽃피는 봄이 오면>은 유채꽃”
2004-06-14

<꽃피는 봄이 오면> 최민식 인터뷰

"친구들과 막걸리 한 잔 한다는 기분으로 연기하고 있습니다."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제작 씨즈엔터테인먼트, 감독 류장하)으로 다시 한번 관객 마음을 뒤흔들 준비를 하고 있다. <꽃피는…>은 강원도 탄광촌 중학교에 임시 음악교사로 부임하게 된 트럼펫 연주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그가 연기하는 현우는 교향악단에 들어가지 못한, 주류에서 밀려난 트럼펫 연주자다. "패배의식에 휩싸여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도 못하면서도 음악 학원에서 용돈이나 벌라는 친구의 말에는 자존심 상해하는 현실 부적응자"가 최민식이 설명하는 현우다.

11일 오후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의 촬영장에서 만난 그는 "친구들과 막걸리 한 잔 하는 기분으로 연기하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미 알려진 대로 '그 인물로 살다가 나온다'는 것은 그가 인물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올드보이> 촬영 때 다소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그는 <꽃피는…>의 촬영장에서는 한층 밝은 모습이 현우와 닮아 있었다. 스태프들이나 동료 연기자들과 끊임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그에게서 삐죽한 머리에 장도리를 든 ‘오대수’는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막걸리 한잔"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올드보이> 촬영 후 "아주 독한 여자와 사랑을 나눈 느낌"이라고 했던 것과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올드보이>가 자극이 센 영화잖아요. <꽃피는…>의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민박집의 따뜻한 아랫목이 생각나더군요. 추운 데서 오들오들 떨다가 민박집에 들어갔는데 주인 아줌마가 따뜻한 불을 때 놓은 거예요. 그래서 이불 속에 손을 넣으니 너무나도 따뜻해서 그냥 옷 입은 채로 잠을 들어도 좋은 거죠. 그런 느낌의 영화예요”

'따뜻한 아랫목'이라고 얘기를 하기는 했지만 그는 "막상 촬영에 들어가려니 할 일이 태산같았다"며 말을 이어나갔다. 가장 큰 것은 트럼펫 연주였다. "어렸을 적 번데기 아저씨의 나팔을 불어본 이후에는 <취화선> 촬영 때 단소를 불어봤던 것 말고는 악기와 인연이 전혀 없었거든요. 캐스터네츠나 트라이앵글 수준이었죠."

그는 개인 선생님까지 두면서 '스파르타식' 트럼펫 '훈련'에 열심이었다. "짧은 기간 치고는 수준급의 연주"라는 것이 스태프의 설명이다. 그는 "간단한 영화 음악 정도는 연주할 수 있는 정도"라고 스스로를 평가하며 "개봉할 때쯤에는 한정된 곡이라도 보여드리기 위해 삽입곡이나 메인 테마 중심으로 맹연습 중"이라고 말했다. <꽃피는…>의 촬영에 들어가기 위한 또 다른 '숙제'는 바로 '현우'로의 변신이었을 것 같다. 그래도 수월했던 것은 "이상은 높지만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인 이 영화의 주인공은 10여 년 전 슬럼프를 겪었던 자신의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방송할 때 이런 것을 겪었던 것 같아요. 방송은 시청률이 떨어지면 가차없거든요. 서너 편이 계속 실패하니 완전히 '꼴아박는' 느낌이더군요. 당시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도 있었고(그는 1996년 전 부인과 이혼을 했다). 그때 (한)석규가 참 고마웠던 게, 제가 술 먹고 빌빌거리며 정신을 못차릴 때 '형 영화(<넘버3>) 한 번 해보자'며 제안을 하더군요. 그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 수 있는 지금의 밑거름이 됐죠. (한)석규도 지금 하고 있는 <주홍글씨>가 잘 됐으면 좋겠네요." 현재 70% 가량 촬영을 마친 '꽃피는…'은 올 추석 때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칸영화제 때문에 중간에 촬영이 중단됐다고 들었다. 다른 환경에서 감정을 유지하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적응이 쉽지 않았다(웃음). 해변의 삼삼한 풍경을 열 며칠 동안 보다가 다시 이곳 강원도 산골로 돌아오는데 오는 길에 있는 (동해) 환상굴이 군대 위병소처럼 끔찍해 보였다. 칸영화제에는 제작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안 갈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가게 됐다. 맥을 끊어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그래서 지금 열심히 달리고 있다.

<올드보이>의 영화제 수상(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이후 어떤 점이 달라졌는가.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어도 당시에 기분은 정말 좋았다. 느닷없이 경쟁부문에 가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니 찡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고 보람도 느꼈다. 하지만 내 삶에서 그리고 연기하는데 있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는 것 같다.

작품 선택 기준은 무엇인가.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어떤 의도와 어떤 맛으로 썼는지 그게 보이는 게 좋은 영화가 되는 것 같다. <꽃피는…>의 시나리오를 본 후 감독을 만나보고 이 사람이 (좋은 의미로)아직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질지 못하고 연약하고 하지만 흔치 않게 따뜻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드보이>가 와인 같은 영화라면 이 영화는 벚꽃이나 유채꽃 같은 영화다.

앞으로 TV 드라마 연기를 할 계획은 없나.

▶차라리 장사를 하지 TV 출연은 못 할 것 같다. 시스템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할 것 같다. 영화는 (감독과) 서로 상의도 하고 잘 안 풀리면 (촬영을) 접고 여관 들어가 자다가 소주도 같이 마시고 하는 게 가능하지만 TV는 공장처럼 찍어내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연기자가 안됐으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나.

▶아마 화류계 쪽으로 빠지지 않았을까? 사실 일하는 것을 짜증나고 귀찮아 한다.(웃음) 머리 쓰고 부지런히, 열심히 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삼척=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