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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특집]“100번째 응모는 축에도 못낀다”

<태풍태양> 100대 1 경쟁 뚫은 이천희씨 이번에도 떨렸다…합격이유?…운이었다

로토 복권 당첨자와 배우 오디션 합격자의 공통점과 차이점. ‘이번에는’ 하는 기대 속에서 번번이 미끄러지다가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설마’하던 행운의 열쇠를 쥐었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한 강도로 기쁨의 ‘날벼락’을 맞는다. 그러나 오디션 합격은 주사위 놀이판의 기다란 지름길 통로가 될 지언정, 그것이 바로 목표지점을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잭 팟’이 될 수는 없기에 둘이 누리는 행복의 질은 완전히 다르다.

반짝 단역으로만 세편의 영화에 출연했다가 <태풍태양>에서 주인공 ‘갑빠’역을 거머쥔 이천희(25)씨는 30여 회의 낙방 끝에 합격의 행운을 얻었다. 드라마, 시에프 오디션을 합하면 그의 오디션 응모 회수는 100회가 넘지만 그 또래의 배우지망생에 비하면 그의 경력은 그리 고된 편도 아니라고 한다.

“<고양이를 부탁해>를 너무 좋아해서 정재은 감독님과 꼭 영화를 해보고 싶었어요. 인라인 하키 선수출신이라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었지만 정작 오디션 때는 너무 떨려서 대사도 제대로 못했어요.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아요.”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이천희씨는 극단 옥랑에서 수습단원을 하다가 매니지먼트사에 발탁돼 패션모델을 하면서 배우의 꿈을 키워나갔다. 죽도록 야구연습을 하면서 찍었지만 야구장면은 모두 잘려나간 <빙우>의 송승헌씨 남자친구, <바람난 가족>에서 팬티차림으로 한 장면 출연한 연이의 남자친구,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서 강동원씨의 친구로 나온 시골 경찰관이 그가 출연했던 영화들. 개봉을 앞둔 <늑대의 유혹>에서는 주인공 조한선을 따라다니는 학교 ‘투짱’으로 비교적 비중있는 조역을 맡았다.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2년 전부터 열심히 오디션을 보러 다녔어요. 최근에는 <발레교습소>같은 영화에서 떨어졌고, 한번은 축구영화에 장애인역으로 뽑혔는데 제작이 엎어진 것도 있구요. 항상 준비한다고 하지만 오디션장 가는 길은 늘 초긴장이죠. 돌아올 때는 후회와 아쉬움이 늘 남구요.”

설경구, 조재현 같은 배우를 좋아한다는 그는 이번 오디션 합격 이유를 ‘운’으로 겸손하게 돌리면서 “저 배우 딱 저 역할이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 하나의 포부는 “다음 오디션에서는 떨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 최고의 배우가 될 때까지 이천희씨의 오디션 ‘도전과 응전’은 ‘쭈욱’ 이어질 계획이다.

오디션 ‘족집게감독’ 김지운씨의 조언

최고 아니라 맞는 사람 찾는것

사실 오디션을 볼 때마다 느끼는 심정이란게 있다. 제한된 시간이라고 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에 제작진이 원하는 적역을 찾아내는 일이 기대감 보다는 회의감이 먼저 드는게 사실이다. 게다가 혹시 우리가 가진 미천한 눈썰미 때문에 정말 비범한 연기자를 못 알아본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와 자책감에 곤혹스러워 할 때도 있다.

매번, 오디션에 참가한 배우 지망생 또는 연기자들에게 “여러분 중 최고를 뽑는게 아니고 필요한 사람 찾는것이다. 그러니 여기서의 평가가 연기자로서의 보편적인 평가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모자라도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특정 프로젝트의 오디션인 것이다. 정말 끊임없이 하는 말이다. 입술 가장자리에 염증이 생기고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하지만 기회를 잃은 오디션 참가자들에게 그 말의 효력이 얼마나 있겠나. 그럼에도 이것은 진실이다.

얼마전 운명을 달리한, 보통 우리가 세기의 명배우 라고 칭하는 말론 브랜도가 오디션을 보기 위해 수십킬로를 걸어가서 문짝 하나 고쳐주고 돌아온 에피소드와 이미 빅스타 였던 그가 <대부> 때 캐릭터를 창조하기 위해 스스로 양볼에 솜뭉치를 집어넣고 스크린 테스트를 자청한 일화는 세대를 걸쳐 두고 두고 인구에 회자되는 이야기다.

오늘날 미국 영화의 저력은 사실 이러한 연기자들의 저력이나 다름없다. 셀 수 없이 수많은 엉터리 미국 영화중에서도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반짝 반짝 빛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독이 꽝인 미국영화는 봤어도 배우가 후진 미국 영화는 많이 못봤다.

오디션 문화에 대한 정서가 보편화 되어있기 때문에 거부감없이 신인과 기성들이 함께 참여해서 경쟁하게 되고 거기서 살아 남는 사람이 인정 받고 존중 받는 사회. 그런 공개적이고 증명적인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문화. 그것이 힘이 되는 사회. 이런 게 저력이다.

그러니 제발 겁내지 말고, 다칠까봐 감싸지 말고, 귀찮다고 피하지말고, 체면보고 허송시간 보내지마라. 히딩크만 배고파야 되는게 아니고 진짜 연기자들이 배고파야 된다. 배고픈 들짐승처럼 달려들어라. 그리고 얻어가길 바란다.

김지운/ 영화감독,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