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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냄새나는 영화 <원데이 다이어트> 첫 상영
2001-06-25

베를린

킁킁, 영화냄새다!

이른 아침, 한 중년 남자의 화장실행. 세계 최초의 냄새나는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일단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조금씩 용기를 내어 본격적으로 코를 벌름거리는 관객의 반응. “와, 그 냄새 진짜네!” 화장실에서 나온 남자가 부엌에서 커피를 끓이는 장면에서야 관객의 코는 조금 편안해진다. 비만으로 고생하는 중년 남자가 하룻동안 다이어트하는 과정을 그린 한 시간짜리 영화 <원데이 다이어트>. ‘세계 최초의 냄새나는 영화’를 표방하며, 21세기 영화사의 첫장을 장식하겠다는 야무진 꿈으로 무장된 이 작품은 지난 6월9일 독일 뮌헨의 슈타쿠스극장에서 첫 상영됐다.

낡은 의자에서 풍기는 곰팡이 냄새나 고소한 팝콘 냄새, 재수없으면 고스란히 맡아야 하는 (목욕 안 한) 옆자리 관객의 퀴퀴한 체취 등은 이미 관객에겐 친숙한 극장 냄새지만, <원데이 다이어트>의 냄새는 ‘스니프맨’이라는 MD플레이어 정도 크기의 검은 기계에 코를 들이대야만 풍겨나온다. 64종에 이르는 각종 냄새를 저장할 수 있다는 ‘스니프맨’은 실내방향제를 생산하는 뤼츠그룹의 개발품이다. “냄새나는 영화로 다차원 영화감상이라는 새로운 장을 개척했다”고 자찬하는 <원데이 다이어트>의 제작자 슈테판 뤼츠는 바로 이 회사 사장이다. 지난해 ‘스니프맨’을 시장에 선보인 뒤 뤼츠는 냄새나는 영화를 만들어 유성영화 개발에 버금가는 센세이션을 일으키겠다는 의욕을 품게 됐는데, 입생로랑 향수로 유명한 돔 프라강스 인터내셔널사를 비롯한 몇몇 화장품 회사들도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에 매혹되어 뤼츠의 별난 프로젝트에 투자를 결정했다. 그렇게 끌어모은 제작비로 마침내 실현된 꿈이 <원데이 다이어트>다.

그러나 <원데이 다이어트>는 냄새가 난다는 사실 외에 작품성을 인정할 만한 어떤 구석도 찾아볼 수 없는 졸작에 그치고 있다. 영화를 찍은 뮌헨 영화전문대 재학생 3명은 헤닝 파츠너, 슈테판 판츠너, 프리더 비티히라는 이름들을 영화사전 한 귀퉁이에 남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졸렬하기 짝이 없는 아마추어 작품을 당당히 선보이는 만용의 주인공임에 틀림없다. 3천만 후각세포를 총동원해 영화를 감상한다는 재미마저 없었다면 상영 뒤 극장표를 물려달라는 관객의 시위를 피할 길이 없었을 성싶을 정도로.

<원데이 다이어트>의 주인공이 거부하는 각종 요리의 그윽한 냄새에 취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관객은 극소수일 뿐 대다수 관객은 어떤 감각보다도 각자의 취향이 중요시되는 후각을 일반화시킴으로써 싸구려 방향제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고 혐오감을 드러냈다. 상영관인 슈타쿠스극장의 주인까지도 “상영이 끝나고 극장 내부를 제대로 환기시키지 않는다면 영화가 풍겨내는 각종 냄새들이 찌들어 결국 동물원꼴이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냄새라는 것이 얼마나 매혹적인, 또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를 그리고 있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제작자 슈테판 뤼츠가 자신의 ‘냄새나는 영화’로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높아만 보인다.

베를린=진화영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