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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변덕은 유난했지만…
2001-07-11

<공공의 적> 촬영현장

강우석 감독은 한가로웠다. 바다를 면하고 있는 거대한 시멘트 공장 안의 한 방파제 중간쯤에서, 강 감독은 쉬고 있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보기에 파라솔 아래 강 감독은 흡사 휴가를 맞아 동해를 찾은 피서객에 가까웠다. 다른 스탭들도 마찬가지였다. 새벽에 몇 장면을 찍은 뒤 일찌감치 아침 겸 점심을 먹은 이들은 촬영 장비용 차가 만들어주는 그늘에서 잠시 눈을 붙이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슈퍼 35mm 카메라도 까만 덮개를 뒤집어쓰고 졸고 있었다.

<공공의 적> 촬영 현장을 이렇게 만든 건 다 저 강렬한 태양이었다. 새벽장면과 연결되는 데다 극중 송 형사(기주봉)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우울한 장면인지라 쏘아대는 햇살 아래서 촬영은 불가능했다. 정오를 넘기자 하늘 한쪽에 웅크리고 있던 먹구름 한 덩이가 슬슬 이동하기 시작했다. “자, 다시 가자.” 강 감독의 한마디에 스탭들 역시 예상하고 있었던 듯 몸을 일으킨 뒤 카메라 주위를 둘러쌌다. 이후 ‘공공의 적’ 태양이 변덕스럽게 고개를 내밀었지만 이번엔 소용이 없었다. 차양을 걸었고, 차 안에서 울린 한발의 총성에 놀란 동료 철중(설경구)이 송 형사의 죽음을 확인한 뒤 오열하다, 결국 마약이 든 가방을 챙겨 방파제 반대편으로 달려가는 장면까지, 빠르고 세심하게 찍어나갔다. 오후 4시로 예정된 고사는 자연스레 저녁 무렵으로 늦추어졌다.

강우석 감독이 근 4년 만에 직접 연출을 맡은 <공공의 적>은 무지막지한 형사 철중과 냉철한 살인마 규환(이성재)이 대결을 벌이는 하드보일드 액션물. 강 감독은 전작들에 비해 캐릭터의 비중이 높지만, 영화에만 전념하는 설경구, 이성재 두 배우의 성실함이라면 충분하다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투캅스>가 고참과 신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황으로 웃음을 전달했다면, 이번 영화에선 두 캐릭터들이 쓴웃음까지도 빚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것 있잖아. 철중은 형사지만, 단서나 추리하곤 거리가 멀어. 그냥 느낌이 범인 같으면 몰아세우는 거지. 그렇게 몰고가면 웃음이 안 터질 수가 없어.” 제작비 26억원을 들여 내년 초 개봉할 <공공의 적>은 강 감독이 급하게 ‘동을 뜨는’ 통에 계약도 채 못하고 내려온 스탭들도 있다는 후문이다.

동해=글 이영진 기자 anti@hani.co.kr사진 정진환 기자 jung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