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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를 향해 쏴라!
2001-07-25

상영불가에 맞서 극장을 점거하고 다큐멘터리 상영, 인종문제 다시 수면위로

영국에서 `영화와 정의`라는 제목을 달고 글을 쓴다면 아마도 영국의 영화감독 켄 로치에 대한 소식으로 짐작되기 쉬울 것이다. `꿈의 공장`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근거지인 캘리포니아에 가서도 주로 남미의 불법이민자들인 청소부 등 잡역근무자들의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에 관한 영화 <빵과 장미>를 만든, 이 감독의 외롭고 꾸준한 투쟁에 관한 얘기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역으로 영국에서 영화와 정의를 연결시켜 얘기하는 것은 켄 로치라는 이름 하나를 제외하고 시대착오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 7월12일 런던 시내의 콘웨이홀에서는 관객과 상영자가 상영을 저지하는 극장쪽에 맞서 영사기와 극장을 점거하고 <불의>(Injustice)라는 98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영화는 그 전주인 7월7일 토요일에도 런던 웨스트엔드의 메트로 시네마에서 상영시작 20분 전 급작스럽게 극장쪽에 의해 상영이 취소됐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죽은 흑인 네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이들의 죽음에 관련된 경찰관 여덟명을 살인자로 지목, 그들의 이름을 공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트로 시네마쪽의 상영 취소는, 이 경찰관들의 변호사로부터 영화를 상영할 경우 법적 제재를 취하겠다는 팩스를 받은 뒤 급작스럽게 결정됐다. 콘웨이홀쪽 역시 같은 압력을 받고 상영을 취소하려 했으나 이를 예상하고 있던 150명의 관객이 극장을 점거하면서 상영이 강행됐다.

이 영화의 공동감독인 켄 페로에 의하면, 이 영화는 무자비한 경찰에게 죽은 네명의 무고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죽음 뒤에 남겨진 가족들이 겪었던 충격과 정의를 위한 그들의 투쟁을 다룬 것이라고 한다. 7년여에 걸쳐 만들어진 이 영화의 상영 기회를 찾고 있던 이들은 대중적인 파급력이 가장 높은 <채널4>가 등을 돌리면서 시내의 극장에서 자체 상영을 시작한 것. 그 시작이었던 메트로 시네마에서의 상영이 취소되자 가족들은 울분에 가득 차서 이제야 처음으로 정의를 말할 수 있는 시점이었는데 그 기회마저 박탈당했다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까지 이 영화에서 살인자로 지목된 경찰관들 중 누구도 조사를 받거나 유죄판결을 받은 바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감독 켄 페로는 한 인터뷰를 통해, 이 영화가 현재의 영국영화에 대한 개념을 바꿔놓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미국사람들은 영국영화라면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정반대에 있다. 즉 이 영화는 ‘네번의 장례식’에 관한 것이다.“ 이 영화는 지난 6월의 선거 전후, 영국 국내의 여기저기에서 분출되기 시작한 인종폭동과 최근 브릭스톤에서 총기 모양의 라이터를 소지하고 있던 흑인 남자를 경찰이 총으로 쏴죽인 사건 등 영국 내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는 인종문제와 관련해 영국사회에서 `정의`를 묻는 심급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초 인권영화제 폐막작이기도 했던 이 영화는 오는 9월 브릭스톤의 리치 시네마에서 2주간 상영될 예정이다.

런던 = 이지연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