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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 <베사메무쵸>
2001-08-16

그동안 10,20대 위주의 영화가 판치던 극장가에서 잔뜩 소외됐던 중장년층들에겐 단비같은 영화다.

중년 부부에게 느닷없이 다가온위기와 갈등, 극복 과정을 그린 `가족 멜로물'이다.

`애들이 넷이랬지? 애들 대학 안 보낼 거야'하고 툭하면 자식을 들먹이며 술수를 강요하는 직장 상사에도 아랑곳없이 정직하게 살아온 증권사 직원 철수(전광렬).

`싸게 판다'는 확성기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마지막 남은 낙지 한 마리를 위해 몸싸움을 벌이는 평범한 가정 주부 영희(이미숙). 방 두 칸짜리 아파트에 자식 넷과 둥지를 튼 부부의 아침은 일곱시 정각에 울리는 자명종 소리만큼이나 부산하다.

넉넉하진 않지만 통장에 돈 모이는 재미로 알콩살콩살던 이 부부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남편의 실직과 함께 1억 원짜리 빚보증 통보가 날아들면서부터. 한 달 안에 빚을 갚지 못하면 집을 날려야 할 위기에서 철수는 바람난 고객의 부인에게서, 영희는 학교 선배로부터 각각 1억 원 대가의 성적유혹을 받는다.

작품이 의지하고 있는 곳은 가족애와 부부간 성모럴이다.

포기할 수 없는 이 두가치에 우선 순위를 매겨야 할 때 갈등은 일어난다.

다소 고리타분한 주제와 줄거리임에도 지극히 한국적 정서에 기대고있기에 영화는 제법 설득력을 지닌다. 특히 IMF위기로 경제난과 가족 붕괴 위기를 경험했을 국내 관객들에겐 한층 호소력을 갖는다.

비슷한 내용의 할리우드 영화「은밀한 유혹」(애드리안 라인 감독, 1993년작)과는 확연한 정서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억만장자로부터 아내와 하룻밤의 대가로 100만 달러 제의를 받은 가난한 부부(데미무어-우디 해럴슨)가 단 하룻밤의 짧은 고민 끝에 제의를 수락했다가 이후 신뢰가 무너져 `유혹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고민을 거듭하다 `가족을 위해' 영희는 제안을 실행에 옮기지만 그의 행동은 이부자리 위에 오밀조밀 모인 50개의 발가락이 비춰지면서 정당성을 얻고 묵인되는 것. 관객은 때로 영희 혹은 철수의 입장이 돼 고민하다가도 부부 갈등을 다룬 TV프로그램의 재판관이 돼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

전광렬과 이미숙, 두 배우의 관록이 묻어나는 연기는 리얼리티에 힘을 실어준다. 이미숙이 아이를 부여잡고 `자식을 위해 시장에서 낙지를 훔쳐야했던 자신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목이나 아들을 업은 채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며 울음을 삼키는 전광렬의 모습은 가슴을 울리고도 남는다.

`철수'와 `영희'라는 평범한주인공들의 이름처럼 이들의 일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 된다.

미세한 감정 변화에 관객들이 동참하도록 클로즈업을 반복하며 카메라로 충분히배우들을 비춰주는 전윤수 감독의 세밀한 연출력도 신인답지않게 능숙하다. 그러나 조연들에 대한 기계적이고도 단선적인 묘사는 리얼리티를 반감시키는 요인으로 꼽힐 것 같다.

십 수년 만에 나타난 고교 여후배에게 하룻밤의 몸 값으로 거액을 제시하는 선배가 과연 현실에 있기나 한 걸까. 한가지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이 영화의 홈페이지에서는 `당신과 하룻밤에 1억원을 준다면 허락하겠는가?'라는 내용의 설문 조사가 진행 중인데 `허락한다'는 응답이 60% 이상을, `허락 안 한다'는 응답은 불과 약 20%였다는 것. 제목 `베사메무쵸'는 `뜨겁게 키스해주세요'라는 뜻의 스페인어. 8월 31일 개봉.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