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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학생 넷, 지하벙커 파티, 실종 18일째, 셋이 주검으로...
2001-08-16

부유층 자제들만 모인 영국의 사립학교에서 남녀 학생 4명이 사라진다. 18일 뒤 겁에 잔뜩 질린 리즈(도라 버치)만이 돌아온다. 그리고 학교 숲속의 은밀한 지하대피소 안에서 3명의 끔찍한 주검이 발견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더 홀>이 재미의 승부처로 삼은 수수께끼다. 이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실마리는 리즈의 증언뿐인데, 정신적 충격에 빠져 있는 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가 문제다. 처음에 그는 친구들의 죽음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 듯한 과거를 제시한다. 그러더니 자기를 좋아하는 마틴을 지목한다. 리즈가 여학생들의 우상인 마이크를 좋아하지만 자신을 거들떠보지 않아 애를 태우자, 마틴이 마이크의 단짝 제프, 제프의 여자친구 등을 엮어 사흘간의 비밀파티를 열어주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4명이 외부에서 잠그는 지하벙커에 들어갔지만 마틴이 약속된 날짜가 지났음에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는 증언이다. 하지만 이 증언은 그 중 3명이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지 잘 설명하지 않는다. 게다가 경찰이 받아낸 마틴의 증언은 또 다르다.

이처럼 갈수록 진짜 사실이 뭔지 헛갈리게 만드는 영화 중반까지 긴장감은 가파르게 높아간다. 하지만 그 모든 사건의 출발을 리즈의 감춰진 사악함으로 떠넘기면서 영화는 급속도로 단순해진다. 특히 3명이 죽어가는 계기들은 이야기의 사실성을 해칠 만큼 어처구니없다. 불완전한 기억과 증언에 의존해 과거를 짜맞춰야하는 구도는 언뜻 <라쇼몽>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흘러간 시간의 복원에 인간의 사사로운 욕망이 끼어들면서 일어나는 혼선으로 사유를 가능케하는 <라쇼몽>과, 악녀가 장난치는 게임의 스릴을 즐기라는 <더 홀>의 거리는 너무 멀어보인다. 가이 버트의 소설 <애프터 더 홀>이 원작이다. 18일 개봉.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