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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사건, 그 마지막장
2001-08-22

<흑수선> 촬영현장

여름 한복판, 휴가를 떠나는 이들과 일상으로 돌아오는 이들로 분주한 서울역 광장과 역사에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관과 남양주 양수리세트장을 돌아온 <흑수선>팀이 서울역에 잠시 여장을 풀었기 때문이다. 서울역 촬영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으로, 스케일과 의미가 특히 큰 부분. 배창호 감독의 노련한 진두지휘와 스탭들의 기민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역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잠복하고 있던 암초들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내가 이 나라 대통령인데, 왜 나한테 허락도 안 받고 이런 걸 찍냐”고 항의를 하거나, 주연배우들에게 시비를 거는 등 취객과 행려들이 보이는 돌출행동 때문이었다. 급기야 제작사인 태원엔터테인먼트에서는 안전하고 원활한 촬영을 위해 예닐곱명의 보디가드를 고용해 현장 정리를 의뢰했다. 수난을 겪기는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구역에 출입과 통행을 제한당하자, “너네가 경찰이냐 뭐냐, 신분증 보여달라”고 항의하며 몸싸움을 불사하는 행인들을 묵묵히 막아내는 일도 그들 몫이었으니까. “빨리 찍고 싶어서 빨리 찍는게 아니라 빨리 찍어야 하기 때문에 빨리 찍는다.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다, 통제가 안 되니까.” 배창호 감독도 지금까지 가장 힘든 촬영이라며, 고개를 내둘렀다.

8월9일부터 18일 새벽까지 진행된 이번 촬영에는 200여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됐다. 재미있는 것은 그중 대부분이 엑스트라 공모에 뽑힌 연기 무경험자들이라는 사실. 동호회 단위로 모집한 엑스트라들 중에는 <태양은 없다>를 200번 이상 본 이정재 팬클럽도 포함돼 있었는데, ‘이정재를 보더라도 달려들거나 소리지르지 않는다’는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일일이 출연료를 지급하지 않고 촬영에 가장 충실했던 동아리에 상금을 몰아준다’는 원칙에 모두 동의한 상태. <흑수선>은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해나가면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연인의 비운을 그려내는 작품으로, 오는 11월 개봉예정이다.

글 박은영 기자·사진 오계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