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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묵시록 + 49분: 리덕스
2001-08-28

79년에 만들어진 <지옥의 묵시록>은, 베트남전을 다룬 다른 미국영화들과 큰 차이가 있었다. 이 영화에서 베트남전은 60~70년대 미국이 베트남민족해방전선과 싸운 구체적 사건이 아니라, 광기와 살육이 난무하는 전쟁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비춰졌다.

전쟁 도중 반란을 일으키고 캄보디아 정글에 자기 왕국을 세운 커츠 대령(말론 브란도)을 찾아가는 윌라드 대위(마틴 쉰)의 여정을 통해 영화가 쫓았던 건 인간 내면에 담긴 광기와 공포의 상관관계였다. 그래서 그곳에서 벌어진 무자비한 폭력의 책임 소재가 어느 쪽에 있는지 따져 묻질 않았고, 2시간30분 동안 전쟁의 상대방인 `베트콩'의 모습이 전면에 나오는 일이 없었다. 목적이 달랐던 탓에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디어 헌터>의 마이클 치미노, <메탈 자켓>의 스탠리 큐브릭, <하늘과 땅>의 올리버 스톤처럼, 베트남전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면서도 “너희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토를 다는 궁색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베트남전은 74년 종전 뒤에도 오랫동안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에 영향을 끼쳐온 너무도 구체적인 사건이었다. 전쟁의 피비린내가 채 가시지도 않았던 79년에, 그 전쟁을 그처럼 추상화해버린 <지옥의 묵시록>은 저주를 타고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15개월 현지 촬영에 3200만 달러를 쏟아붓느라 시간과 돈의 압박이 가중됐고, 끝맺음을 어떻게 할 지 모르겠다는 코폴라 자신의 말이 밖으로 새어나오기까지 하면서 서둘러 147분짜리로 편집돼 스크린을 탔다. 79년 칸영화제는 그랑프리인 황금종려상을 줬지만, 아카데미는 촬영상과 음향상만 할애했고 평단에서는 비아냥조의 반응까지 나왔다.

못내 아쉬웠던 코폴라는 이 영화의 주요 스태프들을 모아 2000년 3~8월까지 6개월간의 복원작업을 거쳐 올해 칸영화제에서 <지옥의 묵시록:리덕스>를 공개했고, 유럽과 미국의 언론으로부터 찬사가 쏟아졌다. 49분이 늘어난 196분짜리 이 영화가 31일 개봉한다. 종전 뒤 4반세기가 지나, 사람들은 이제 베트남전을 여유를 갖고 볼 수 있게 된 걸까. 새로 들어간 부분은 윌라드 일행이 위문공연온 플레이 걸들을 만나 헬리콥터 기름과 섹스를 맞바꾸고, 프랑스인들의 농장에서 윌라드가 한 여인과 정사를 나누는 등 윌라드 대위의 여정에 따라붙는 에피소드들이 주를 이룬다. 전체 줄거리에는 큰 변화가 없다. 어느 편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베트콩’이 안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만 디테일이 늘어나면서 윌라드 대위의 정서의 흐름이 좀더 뚜렷해지고, 인간 내면을 찾아가는 영화의 동선도 안정감을 얻는다.

베트남전의 추상화에 대해 평단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기까지, 또 어떻게 마무리할지 몰라했던 코폴라가 자신감을 갖고 영화의 맥락을 가다듬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그만큼 오랜 시간의 흐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지옥의 묵시록:리덕스>는 디지털로 새로 편집하면서 색상을 조절하고 사운드도 새로 믹싱해 화면과 음향이 더 생생해졌다. 마을을 향해 바그너의 <발퀴레>를 틀어놓고 헬기 사격을 가하는 장면은 그때도 압권이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한층 더 강렬하다.

임범 기자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