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국내뉴스
<베사메무쵸> 은밀한 유혹 응할 것인가
2001-08-28

<단적비연수>에 이은 강제규 필름의 신작 <베사메무쵸>(감독 전윤수)는 여러모로 로버트 레드퍼드와 데미 무어가 주연했던 <은밀한 유혹>을 떠올리게 만든다. 부동산 투자에 실패하고 집까지 빼앗길 위기에 처한 젊은 부부에게 한 백만장자가 100만달러를 대가로 아내와의 하룻밤 잠자리를 제안하는 영화였다. 고심 끝에 부부는 이 `게임'에 응하지만, 그 결과 심각한 혼란과 갈등을 겪는다.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는 <베사메무쵸>는 주인공의 이름 만큼이나 꽤나 `한국적'이다.

철수(전광렬)와 영희(이미숙) 부부는 간신히 마련한 18평 아파트에서 네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 없지만 행복하다. 그런데 증권사 과장인 철수가 회사의 주가조작 작전지시를 거부하면서 직장에서 쫓겨나더니 친구의 빚보증이 잘못 되는 바람에 집을 차압당할 위기에 처한다. 돈을 구하느라 동분서주하는 부부에게 제각기 은밀한 유혹이 찾아든다. 영희에게는 학창 시절 선배가, 철수에게는 고객이던 젊은 사업가의 부인이 단 한 번의 잠자리에 1억여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던진다. 그리고 어느 한 쪽이 이 거래를 성사시킨다.

20대 관객의 극장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현실에서 62년생의 두 배우를 주연으로 세워 30·40대를 겨냥한 <베사메무쵸>는 무척 도전적이다. 하지만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면 이런 과감성은 신파조의 완고함으로 대체된다. 전반부의 초점은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영희가 떠맡아야 할 억척스러움과, 평범한 부부의 일상을 위협하는 이 사회의 잔혹함이다. 대형 할인 매장에서 벌어지는 주부들의 눈물어린 투쟁을 극적으로 보여주거나, 아이들로 복닥거리는 집안 풍경을 꽤 오래도록 묘사하는 식이다. 그런데 위기와 유혹이 동시에 찾아든 중반 이후 질문은 정조의 문제로 급격히 돌아선다.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가정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거래였음을 내내 보여주고는 갑자기 인물 사이의, 인물 내부의 갈등을 모두 정조의 문제로 몰고가는 건 어딘가 이상하다. 결혼 10년차쯤이면 생활에 치이느라 부부의 애정에 어떤 골이 있었던 건 아닌지 탐색해가는 게 현실적이지 않았을까. 모든 문제와 상처가 극적으로 봉합되는 결말에 이르면 `가짜 같은 가짜'를 보는 느낌이 절정에 이른다.

<은밀한 유혹>에서는 정조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 상호간의 믿음에 어떻게 균열이 생기고 그 틈이 커져가는지 보여주는 데 꽤 오랜 시간을 돌렸다. 이 영화 개봉 당시 같은 내용의 `잠자리 제안'을 받는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 여성의 80%가 기꺼이 응하겠다고 밝혔다. 설문 대상이 미국인이었지만, 이런 현실과 <베사메무쵸>가 전하는 내용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다.

이성욱 기자lewoo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