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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은 `18세 가`의 한계 허물기”
2001-09-13

김혜준/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실장

지금까지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성적 묘사가 지나치다고 판단한 영화들에 대해 등급보류 조치를 내려왔다. 이 경우, 해당 영화사는 일반 상영을 위해 문제시된 장면을 삭제하는 편법을 취해왔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영화에 대해 ‘18세 관람가’ 등급을 내주고 일반 상영관에서 트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영화계는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과 수익성이라는 실리를 함께 실현할 수 있으므로 찬성할 것이다. 반면 종교·청소년·여성쪽에선 자유를 넘어선 방종을 우려하며 반발하고, 법과 제도를 다루는 쪽에서도 쉽게 동의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을 실현하려 한다면, 우선 영화관을 포함한 영화계 자체의 의견을 통일하고 등급분류에 따르는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는 영화계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등급기구를 출범시키고, 합리적인 등급기준도 제시해야 한다. 위헌판결 이전보다 훨씬 잦을 각종 직능단체와 언론의 시비나 경찰·검찰의 ‘음란혐의’ 적용에 대해서도 기죽지 않고 맞서야 한다. 감옥행도 각오해야 한다. 심지어 법으로 제도화된 등급기구가 따로 출범한다고 해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이러면 소수(취향)의 영화를 왕따놓으며 다수(취향)의 영화를 보호하는 미국이나 일본식의 ‘분리형 등급제’보다 훨씬 더 앞선 방식이라 할 수 있는,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에 대해 같은 입장을 취하는 ‘일체형 자율등급제’를 실현할 수 있다.

직능단체·정부·국회·검찰 등과 맞상대할 자신이 없다면 다른 방법도 있다. 일정한 타협이다. 일단, 등급기구는 공동으로 구성하되 여전히 제한상영관은 두지 말자고 한다.

아니면 제한상영관(등급외든 성인전용이든 작명은 중요치 않다)에서는 ‘소프트코어 포르노’를 틀 수 있게 하고, 나머지는 18세까지 내줘서 일반상영이 가능케 하자고 한다. 하지만 등급기구를 함께 구성하는 다른 쪽에서는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소프트코어 포르노’와 성과 폭력의 수위가 강한 일부 18세 관람가 영화를 구분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안을 결정하는 순서도 문제인데, 등급기구 구성과 성인영화관 설치에 대한 합의가 먼저 이뤄질 수밖에 없고, 구체적인 기준의 설정은 그 다음이다. 또 미래시점에 등급분류의 대상이 될 어떤 영화에 대해 ‘소프트코어 포르노’냐 ‘18세 관람가’냐를 미리 가려서 정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하다.

결국 타협을 하려고 작정하는 순간 대부분의 영화를 18세 관람가로 만들려는, 나아가 제한상영관은 포르노상영관이어야 한다는 영화계의 입장이 그대로 관철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영화계는 타협할 의사가 없는데 법적으로 제도가 마련되어서 타협을 강요하는 경우는 어떤가? 즉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위헌판결의 정신은 그대로 살려 검열은 하지 않는 대신 일반 공개 이전에 영화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모든 영화에 대해 등급분류라는 절차를 거치도록 강제한다면? 표현의 수위가 높은 일부 영화에 대해서는 제한적인 상영기회만 보장하는 방식으로 법을 개정한다면? 심지어 등급기구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제한상영관도 허가해준 마당이라면? 장담하긴 그렇지만, 이 경우 다시 위헌판결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첫 번째 방식을 관철시키기 어렵다면, 영화계는 스스로에게 유리한 타협안을 실현시키는 편이 나을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등급기구의 구성이다.

즉 각종 매체로부터 청소년을 격리시키는 것을 보호책의 전부로 아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영화 관객의 다수를 점하는 젊은층의 참여가 보장되도록, 나아가 영화의 전후맥락과 지배적인 가치관을 중심으로 판단할 줄 아는 합리적인 전문가들로 기구가 만들어지느냐가 관건이다. 그리된다면 반 이상은 성공하는 셈이다.

그리고 18세 관람가 등급의 표현수위를 높이기 위해, 나아가 형법에 의해 음란판정을 받는 경우를 최소화하기 위해 설득하고 맞부딪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제한상영관을 제도화하자는 이제까지의 논의 수준이 등급분류제의 마지노선임은 분명하다. 이 최저점으로부터 ‘일체형 자율등급제’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대안 중에서 어떤 방식을 실현시키느냐는, 스스로의 운명을 책임지려는 영화계의 선택과 행동에 달려 있다. 물론 그 선택은 논리적으로 옳고 실현가능한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