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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으나 가질수 없는 ‘설익은’ 사랑
2001-10-05

<못다한 27번의 키스>에서 14살 소녀 시빌은 41살의 중년 알렉산드라를 지독히 사랑한다. 그런데 알렉산드라의 유일한 피붙이인 아들 미키가 이 소녀를 사랑한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작 알렉산드라는 다른 유부녀들과 밀애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다. 한 소녀와 부자의 삼각관계는 버거운 만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소재다. 아들의 여자를 사랑한 <데미지>나 소녀를 사랑한 끝에 그 어머니와 결혼까지 하는 <로리타>같은 영화가 그랬다.

놀랍게도 <못다한 27번의 키스>는 부담스럽기는 커녕 슬슬 미소짓게 하다가 웃음을 참지못하게 만드는 재주를 보인다. 팬터지와 사실주의를 부드럽고 유쾌하게 넘나드는 연출 덕분이지만, 그 은유의 정치학은 날을 퍼렇게 세우고 있다. 성숙한 여인과 풋풋한 소녀 사이에 걸쳐있는 시빌의 나신을 과감히 보여주는 것도 그렇다. 옛 소련의 그루지야 공화국 출신의 여성감독 나나 조르자제는 시빌의 거침없는 갈구를 자유와 독립을 꿈꾸는 정치적 메시지로 바라보게 하는 근거들을 충분히 펼쳐놓아 관음의 혐의를 쉽게 벗는다.

하나의 대상이나 사건에 의미를 겹쳐놓는 방식은 계속 이어진다. 한 소녀와 부자가 얽힌 애정의 시선은 서로 마주치지 않아 불꽃을 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열정들이 이들 주변에서 타오른다. 알렉산드라와 자주 정사를 나누는 한 여인은 괜찮은 마을 남자들을 모조리 자기 애인으로 만든다. 이 사실을 잘모르는 남자는 남편 뿐이지만, 이 여인의 애정 행각을 틈날 때마다 보여주는 화면에는 도덕적 힐난이 없다. 그 남편을 단순무지한 군대 지휘자로, 시어머니를 단순과격한 관료로 그리며 비꼬는 데서 그 의도를 드러낼 뿐이다.

자유를 꿈꾸는 시선은 분출하는 욕망에 손을 대려는 어떤 시도도 비난한다. 마을회관 같은 곳에서 이벤트처럼 상영된 에로물 <엠마누엘>은 그날 밤 많은 사건을 낳는다. 도덕주의자 행세를 하던 교장이 엉뚱한 침대에서 비명횡사하고, 영화 속 엠마누엘처럼 열대의 자연에서 사랑을 나누고자 했던 연인은 권력자의 저택에 들어가 한바탕 일을 치르며 기막힌 소동을 만들어낸다.

소녀 시빌을 둘러싼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태도다. 시빌을 가운데에 둔 부자는 오해에서 비롯된 비극을 맞고, 도덕적 비난에 갇혀있던 시빌은 더 넓은 세상으로 도망치듯 떠난다. 시빌이 일으킨 비극에 대해 책임을 묻기는 커녕 그의 자유의지와 욕망에 손을 들어주는 셈이다. 이것을 위태롭게 볼 것인지, 수긍할 것인지에서 관객의 태도가 갈릴 터이지만, 흥미진진한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지난해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작품이다. 6일 개봉.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