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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가는 할리우드?
2001-10-09

금발이 너무해

<금발이 너무해> 속 `오만과 편견`

최근의 미국영화 가운데 <금발이 너무해>만큼이나 할리우드의 ‘오만과 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영화가 또 있을까? ‘따분하고 못생기고 심각하기만 한’- 엘르 아버지의 말- 동부의 파워 엘리트들 및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문화산업의 메카 할리우드의 우월감과 반감이 영화 한편에 모두 드러나 있으니 말이다.

<금발이 너무해>에서 우리는 많은 이항대립쌍을 찾아볼 수 있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흑발여성/금발여성- 이 대립쌍은 워너에 따르면 ‘재클린 케네디/마릴린 몬로’가 될 것이다- , 이성/열정, 동부/서부, 무채색/원색, 정숙함/야하고 화려함, 사려깊음/단순성, 속물근성/솔직함, 추론/직감 등등. 결국 정치·경제적인 중심지로서의 동부에 대한 표상과 문화산업의 중심지로서의 서부에 대한 표상 사이의 단순한 대립이 <금발이 너무해>를 이끌어나가는 주요 원동력이 되고 있는 셈이다. <금발이 너무해>는 이들 요소를 완전히 상반되는 것으로 묘사하면서 그들간의 접점에서 발생하는 긴장에 집중하는 대신 어느 한쪽을 지나치게 폄훼함으로써 웃음을 끌어내고 있다. 즉, 간단명료하게 그 대립항의 한쪽을 속물적 주지주의, 지루함, 파벌주의 등의 속성과 연관시키면서 몰아세운다(이러한 태도는 무엇보다 영화의 포스터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이는 <금발이 너무해>가 신랄한 풍자로 나아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치졸한 조롱에 머물고 마는 원인이 된다.

<금발이 너무해>가 희한하게 느껴지는 것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법정장면에 가서는 정작 그러한 대립의 구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화 중반 이후 새로이 부각되는 또다른 대립쌍(동성애/이성애)의 존재 때문이다. 여학생 모임의 레즈비언- 대충 머리끈으로 묶은 부스스한 머리에 두꺼운 테의 안경을 끼고 있다-, 게이인 수영장 청소부와 고작 ‘나쁜 년!’ 한마디만 내뱉고는 간단히 퇴장해버리는 그의 연인, 그리고 무엇보다 젊은 계모에 대해 묘한 애정을 품고 있었던 듯 보이는 딸- 그녀의 살인행각은 치정에 얽힌 사건이라는 짐작도 가능하다- 의 모습에 주목해보라. 이쯤에서 영화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시각을 다시 20년 정도 후퇴시키면서 할리우드의 또다른 편견을 여실히 드러내고야 만다.▶ <개봉작> 금발이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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