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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돌린을 든 점령군 장교
2001-10-16

`코렐리 대위의 만돌린`이라는 원작 소설의 제목처럼 니콜라스 케이지가 맡은 이탈리아 장교 코렐리의 등장은 인상적이다. 코렐리는 말쑥한 군복을 입기는 했지만 총 대신 만돌린이란 악기를 메고 나타난다. 나치와 손잡은 무솔리니의 포병을 이끌고 그리스의 작은 섬 케팔로니아에 점령군으로 입성하지만, 전쟁이나 정치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어보인다. 부하들과 매춘부들을 이끌고 아름다운 해변에서 걸쭉한 파티를 즐기며, 막사에서는 오페라 합창을 지휘한다. “하일, 히틀러”라고 인사하는 독일 장교에게 “하일, 푸치니”라고 멋지게 대꾸하는 건 그래서 자연스럽다.

코렐리의 낭만적이고 낙천적인 분위기는 점령군과 피정복민인 섬 주민의 기묘한 동거로 이어진다. 섬의 청년들이 2차대전의 한복판으로 달려간 사이, 그리고 그들이 게릴라가 되어 산으로 올라간 사이, 섬의 여자들은 마을 광장에서 코렐리의 부대원들과 여유로운 댄스파티를 갖는다. 정복의 의지가 전혀 없어보이는 군인들과 민간인들의 축제는 어색하지만 평화롭다.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으나 불가능할 것도 없는 이런 장면들이 <코렐리의 만돌린>이 지닌 독특한 매력이다.

그 다음부터는 할리우드판 `그 섬에 가고 싶다'다. 나치의 `활약'이 기승을 부리면서 이탈리아군은 그리스 게릴라들과 손을 잡고, 전투와 학살이 이어진다.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전쟁의 와중에 유린당한 섬의 과거를 한맺힌 사연으로 풀어내지만, 할리우드가 만든 `그 섬'에는 이런 진지함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건들은 복잡하게 얽혀가고 비극은 증폭되지만,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건 코렐리와 섬의 아름다운 처녀 펠라기아(페넬로페 크루즈)의 극적인 사랑이다. 여기에 펠라기아의 약혼자였던 그리스의 열혈청년 만드라스(크리스천 베일)를 끼어넣어 삼각관계를 만드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영화는 애매해지고 만다. 역사의 아픔, 전쟁의 스펙터클, 사랑의 환희, 그 어떤 것도 영화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작은 잔상들만 남기고 지나쳐 간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존 매든 감독이 연출했다. 19일 개봉.

이성욱 기자lewoo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