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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품행 방정해졌어요”
2001-10-17

할리우드, R등급 영화 마케팅 문제삼은 상원 연방위원회로부터 합격점 예상, 하지만 극장 수입은 급감

R등급 영화의 마케팅이 은연중에 17세 미만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행해지고 있음을 지적하며 미국 상원 연방통상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가 할리우드를 공격하는 리포트를 발표한 것이 지난해 9월11일의 일. 워싱턴은 이후 청문회 등을 통해 메이저 스튜디오에 압박을 가했고, 할리우드와 미국 극장업계는 정치권의 간섭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자율 규제조치를 취해왔다. <버라이어티> 최근호는 이달 말로 예정된 연방통상위원회의 후속 보고서 발간을 앞두고, 할리우드가 ‘품행’이 현저히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을 게 분명하다고 예상했다.

할리우드가 기울인 제도적 노력의 대표적 예는 미국 영화협회(MPAA) 잭 발렌티 회장을 의장으로 하고 각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파견된 대표자로 이뤄진 특별 마케팅위원회의 구성. 스튜디오들은 발렌티가 골자를 잡은 12개 협정에 따라 R등급 영화의 매체 광고가 적어도 ‘의도적으로’ 17세 미만 관객에게 노출되는 경우가 없도록 관리해왔다. 워너 등 일부 스튜디오는 35% 이상의 관객이나 시청자가 17세 미만으로 예상되는 장소나 시간대에는 아예 R등급 영화 광고를 하지 않도록 결정하기도 했다. 17세 미만인 등급만으로는 영화의 폭력적, 선정적 요소를 판별하기 어렵다는 비판에 따라 예고편은 왜 이 영화가 해당 등급을 받았는지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정보를 더 많이 포함하게 되었고, 홈 비디오의 케이스는 등급의 범례를 표기하도록 새로 디자인됐다. 부모들에게 영화 등급에 대한 정보 사이트를 홍보한 것도 영화계가 보인 성의. 극장업계 역시 지난해 11월부터 보호자 없는 청소년의 입장제한을 자체 강화한 바 있다.

정계의 자정요구 이후 눈에 띄는 또다른 변화는 R등급 영화 수익의 두드러진 감소. 2000년 9월부터 올해 9월까지 R등급 영화들의 총입장수입은 42% 줄어들었으며, 시장점유율은 1996∼97년의 같은 기간에 비해 45%에서 35%로 떨어졌다. <버라이어티>는 이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R등급 마케팅의 규제강화가 스튜디오로 하여금 과거였다면 R등급으로 만들어질 만한 영화들을 PG-13등급 기준에 꽉 차는 표현수위로 제작하도록 부추겼다고 분석했다. R등급 영화의 주수요자인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취향이 과거 어느 때보다 종잡을 수 없게 된 것도 근본적인 원인. <버라이어티>는 <한니발> <아메리칸 파이2> 같은 R등급 대박 영화도 있었던 한편, <록 스타> <북 오브 섀도우> 같은 R등급 기대작이 R등급 영화의 평균수익을 끌어내렸다고 정리했다.

통상위원회가 호의적인 후속 보고서를 낼 것이라는 예측에 힘을 더해주고 있는 요인은, 통상위원회의 첫 번째 리포트 발표 뒤 꼭 1년이 된 지난 9월11일 터진 무역센터 테러사건 이후의 상황이다. 큰 손실을 감수하고 공공 정서에 자극이 될 영화의 개봉을 보류한 스튜디오 간부들의 결정이나 수백만달러의 의연금 모금을 주도한 영화인들의 성의가 워싱턴 정계 인사들의 깐깐한 시선을 누그러뜨리고 있다는 관찰이 나오고 있는 것. 이러한 의견을 뒷받침하듯 조셉 리버먼 상원의원의 댄 거스타인 수석 보좌관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할리우드는 국민들의 신경을 거스르거나 사태의 여파를 상업적으로 착취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며 놀라운 자제력을 보였다”고 평했다.

그러나 워싱턴과 할리우드의 ‘데탕트’ 분위기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미지수. 가라앉은 미국인들의 집단적 정서와 그에 발맞출 할리우드영화의 내용이 언제 바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인들 사이에는 테러 이후 사회분위기를 이용해 워싱턴이 영화계에 더욱 보수적인 기준을 강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돌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교묘하고 소리없는 검열에 직면해 있다. 워싱턴의 정치인들은 우리 영화인들이 하는 일에 대해 겉핥기식의 이해를 갖고 있다”는 것이 현재상황을 바라보는 어느 영화계 관계자의 코멘트다.

김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