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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화 만들면 뭐하나? 보아주지 않는데…
2001-10-18

이제 관객이 나설 때

▣ <고양이를 부탁해> 예고편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의 씨네코아 극장에서 <고양이를 부탁해> 첫 시사회가 끝나고 인근 찻집에서 이 영화의 제작진을 만났다. 명계남(49)씨도 그 자리에 와 있었다. 명씨는 <박하사탕>을 제작한 이스트필름 대표이고, 부산영상위원회 위원장이고, 잘 알려진 대로 대다수 한국영화에 출연해 얼굴을 내비치는 `한국영화 공인 배우'이다. 하지만 그는 <고양이를 부탁해>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왔던 건 영화가 좋아서 제작진을 독려하고 싶어진 때문이었다.

“영화 좋네, 컨셉도 참 좋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영화계 후배이자 이 영화의 제작사 마술피리 대표 오기민(40)씨에게 한마디 건넸다. 조금 있다가 “한 10억원은 벌겠는데, 그럼 우리 <오아시스>(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다음 영화) 찍는 데에 1억원만 빌려줘”라고 오씨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오씨는 바로 “그럼요, 1억원 빌려 드리는 게 아니라 그냥 드릴게요”라고 답했다. 정말로 10억원 벌면 1억원 줄 것같은 태도였다.

명씨와 오씨, 옆에 있던 나까지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같다. <고양이…>로 10억원을 벌겠어? 좋은 영화하고 손님 드는 영화가 따로 있지. 배두나, 이요원이 있지만 아직 스타 파워가 약하고, 액션도 코미디도 아닌 `성장영화', 그것도 여자들의 성장영화라는 컨셉이 먹히겠어? 서울에서 10만명만 봐 줘서 크게 손해보지만 않으면 선방한 거지.

지난 6일 이 영화는 서울 19개, 지방 28개 등 전국 49개 스크린에서 개봉했다. 지난 17일까지 서울 1만명, 지방 1만명 등 총 2만명이 관람했다. 그랬더니 서울에서 4개 극장만 남기고 다 간판을 내려버렸다. 홍보비 포함해 15억원이 들었으니 20만명이 봐도 본전이 안 되는데, 2만명이면 제작자에게 돌아오는 수입이 1억원도 안 된다. 너무 야박한 결과다.

명씨가 이 영화 홈페이지(www.titicat.com)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귀중한 영화, 소중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이제 영화를 어떻게 만드나? 무조건 스타가 시간이 날 때까지 기다려서 그저 신나게 웃기는 그런그런 영화를? 제작자가 투자자를 아무리 구슬려서 이런 영화 어쩌다가 만들면 뭐하나? 보아주지 않는데. 다시는 이런 영화가 기획 되지도 않을 거고, 기획해도 `손님이 안들어'하고 아무도 투자하려 하지 않을 텐데… 미치겠네.”

한국영화는 양적으로 폭발적 증가를 보이고 있지만, 질과 다양성 면에서는 기로에 서 있다. 20여개 영상투자조합에서 1700억원의 돈을 영화에 굴리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윤을 좇는 펀드들이다. 조폭, 엽기녀, 코미디 등 이미 검증된 흥행 코드를 안이하게 따르는 영화만 되고, 새로운 영역의 개척에 성공하고 있는 영화들이 이렇게 참패한다면 이 돈이 어디로 갈까. 이 영화 게시판에는 <고양이…> 권장운동을 펼치자는 관객들의 제안이 줄을 잇고 있다. 명씨가 쓴 글의 제목은 `이제 관객이 나서야 한다'이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