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국내뉴스
일본군 구해줬더니 학살로 갚더라
2001-10-26

<귀신이 온다>

도덕은 개인들 사이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일지 모른다. 집단간에, 나아가 국가나 민족 간에 벌어지는 일들의 동기를 설명하거나 책임을 따질 때 도덕이라는 게 쓸모가 있을까. 전쟁이 벌어져 집단적 광기가 횡행할 때, 도덕을 믿고서 눈 앞에 보이는 시람을 찾아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어리숙한 인간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배신을 당할 수 있다. 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는 중국의 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한 <귀신이 온다>는 그 배신의 순간을 충격적으로 잡아낸다.

일본군 기지 바로 옆 마을의 한 집에 복면한 이들이 나타나 포박한 일본군인 두명을 맡긴다. 주인에게 총을 겨누고서 다시 돌아올 때까지 이 두명을 가둬놓고 있으라고 협박하고 돌아간다. 어쩔줄 몰라하던 주인은 마을회의를 열어 복면한 이들이 중국군일 것으로 단정짓고 그들이 올 때까지 두명을 광에 가둬두기로 결정한다.

선량한 주인은 두명에게 정성을 다해 밥을 지어 먹이고, 일본군에게 들킬 위험에 처해 마을 사람들이 죽이라고 할 때도 죽이지 않는다. 결국 두명을 설득해 일본군에게 돌려보내고, 일본군은 두명을 살려준 마을에 축제를 베풀어준다.

그러나 잠시 뒤 엄청난 학살이 자행되고, 주인이 정성을 다해 보살폈던 일본군 포로가 그 학살에 앞장선다. 가까스로 살아난 주인은 복수를 기도하지만 일본의 패전으로 중국군이 마을을 탈환했을 때 또 다른 배신이 일어난다.

배신당한 양민들은 눈이 돌아가고 속이 뒤집히는데 배신한 주체와 이유는 명확하지 않은 기막힌 상황은 영화 제목처럼 `귀신'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3분의 2가량을 일본군 포로를 어쩌지 못해 안달하는 마을사람들의 에피소드 중심으로 코믹하게 이끌어간다.

그러다가 갑자기 학살이 시작되는 배신의 순간은 섬뜩하기 그지없다. 그 배신당함의 비극성을 온전히 전하는 이 영화는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장이무 감독의 <붉은 수수밭>의 배우로 국내에 잘 알려진 지앙 웬이 <햇빛 쏟아지는 날들>에 이어 두번째로 감독한 영화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