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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인의 영화관람석] <와이키키 브라더스>
2001-11-07

낭만적인 그룹 사운드가 포스트모던한 냉소를 먹고 자라면 밴드가 된다? 반만 맞는 말이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나오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밴드로 출발해서 그룹 사운드를 거치지 않은 채 세월에 떠밀려 흐르고 있는 밴드다. 잘 나가는 밴드가 아니라 사람 찾지않는 온천지역의 썰렁한 나이트클럽의 밴드다. 퍼스트 기타리스트인 주인공 성우가 마지못해 온 고향 수안보에는 옛 짝사랑 애인 인희가 야채 트럭을 몰며 아이와 살고 있었다. 고교시절 같이 밴드를 했던 친구들은 약사, 환경 공무원, 환경 운동가로 제각각 살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뻔하지 않은가. 하지만 결코 뻔하지 않다.

이 영화는 성우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와해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자존심 있던 악사들이었지만 이제 그들의 인기는 너훈아만도 못하다. 수안보로 오던 도중에 한 명이 빠져나가고 드럼, 신시사이저, 퍼스트로만 구성된 3인조 밴드는 때밀이 여자를 사이에 둔 다툼에 의해 드러머 강수가 또 탈락하여 이빠진 밴드가 되고 만다. 그래서 알콜중독인 옛 스승이 드럼을 맡게 되지만 그 결과 역시 참혹했다. 게다가 세상은 이제 오디오가 아니라 비디오를 원했다. 나이트클럽 보이가 리듬 박스를 다루면서 개그맨 같은 악사를 해도 되고, 신시사이저 한 대 만으로도 나이트의 유흥은 유지될 수 있었다.

그들 부류가 <서편제>에 나오는 소리꾼들을 몰아냈듯이 그들 역시 밀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흐름을 슬퍼하거나 과거는 아름다웠노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시간과 기억 그리고 불투명한 미래를 향한 태도에 관해 말한다. 그 발언들은 고정된 카메라와 느린 움직임 속에 실려 있고, 그래서 세월의 흐름조차 선형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고교 시절 해변가의 추억이나 옛친구들과 자위적인 노래를 불러 제치는 순간이나, 다들 미쳐 날뛰는 룸 싸롱에서 역시 발가벗고 연주하는 성우의 현재 등은 모두 같은 시간대에 머무르는 듯하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은 정돈된 플롯의 구조와 인물 감정과 대사를 최소화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정보를 덜 준 채 계속 사건을 진행시키고 음악을 흘리는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전략은, 아마도, 임순례 감독의 현재의 삶에 대한 어떤 태도와 연관된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마지막, 여수의 한 나이트클럽 무대에 성우와 인희는 서 있다. 인희는 바로 직전 장면에서 “그러고보니 바다 본 지도 꽤 됐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의 기억이 그들을 묶은 것은 아니고, 그들이 같이 있다고 해서 희망이 주어진 것도 아니다. 그들의 시간과 기억 그리고 미래는 체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낭만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화라고 개념짓고 싶다. 이 개념에 길길이 날뛸 사람도 많겠지만 말이다.

이효인/ 영화평론가, 계간 <독립영화>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