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국내뉴스
제한상영관, 문 열린다
2001-12-03

영진법 개정안 독소조항 대폭 삭제, “등급 거부 자유는 여전히 제한” 비판도

악평과 극찬이 공존하는 파졸리니의 <소돔의 120일>을 이제 원판대로 극장에서 볼 수 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제한상영관 도입으로 가는 길이 부쩍 넓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11월29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가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통과시킨 영화진흥법 개정안이 지난해의 정부안보다 일보 진전한 제한상영관 규정을 마련한 것이다.

의원 발의 형태로 진행된 이번 개정안에선 독소조항으로 꼽히던 조항들이 대부분 삭제됐다. 지난해 8월 정부가 입법예고한 개정안 제21조4항이 대표적인 예. “등급위가 상영등급을 분류함에 있어서 당해 영화가 성과 폭력 등의 과도한 묘사로… 다른 법령에 저촉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상영등급을 분류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적시한 이 문제의 조항은 “등급보류와 다를 바 없는 또 하나의 검열장치”라는 영화인들의 비판을 받았었다. 형법 등 다른 법률에 저촉될 경우에 한해 관계기관에 사전통보할 수 있다는 조항 역시 이번 개정안에서는 빠졌다. 타 법률의 처벌 대상이 될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것이 당시 정부의 주장이었으나, 등급위가 위법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명백히 월권이라는 영화계의 주된 의견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해마다 논쟁의 도마에 올랐던 성인연령 역시 청소년보호법상의 19세가 아닌 현행대로 18세를 유지키로 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제한상영관은 전체 관람가, 12세 관람가, 15세 관람가, 18세 관람가 등을 제외하고,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일정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영화를 상영하게끔 되어 있다. 이번 개정안은 12월3일 문화관광위원회 상임위원회와 법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12월7일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등급위의 등급보류 조치가 위헌이라는 헌재의 판결이 나온 뒤라 쉽게 통과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지난해 정부에서도 ‘등급보류제 폐지, 제한상영관 도입’을 골자로 하는 영진법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국회 심의과정에서 등급보류제도가 필요하다는 일부 의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계류됐었다.

물론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도 있다. 상영 전 등급분류 의무화 조항 때문. 애초 사전협의 과정에서 한국독립영화협회 등은 예술영화, 독립영화 등에 대해서는 사전심의 없이 상영이 가능하도록 해달라는 주문을 했으나, 이번 개정안의 내용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조영각 사무국장은 “등급분류를 받지 않을 자유 또한 주어야 한다”면서 “현재 인권영화제 등 등급심의를 거부하고 있는 소규모 영화제들의 작품들을 언제까지 비합법의 영역에 놓아둘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문광위의 한 관계자는 “등급분류를 의무화하지 않을 경우 제한상영관은 외국 포르노물 전용관이 될 것이라는 현실적인 우려 또한 고려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예술영화, 독립영화의 경우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심의면제 조치 등을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좀더 지켜보아야겠지만 제한상영관 도입이 확정되면 화염은 현 등급위의 분류기준 및 위원회의 명실상부한 민간자율화를 위한 논쟁으로 옮겨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