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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리포트] 테러 뒤의 도시찬가 열창, 현대미술관서 <…영화 속의 뉴욕>전
2001-12-04

애국심만이 9·11 테러가 가져온 이데올로기적 열풍은 아니다. LA나 워싱턴 D.C가 아닌 뉴욕이었기에 가능했던 또다른 집단의식은 바로 애향심이다. 슈퍼마켓의 비닐봉지에나 새겨지던 ‘아이 러브 NY’이란 구호는 이제 전혀 입에 발린 말이 아니다. 토크쇼에서 광고에서 뉴스에서, 그리고 줄리아니 시장부터 지나는 행인에 이르기까지 뉴욕을 향한 사랑고백은 끊일 줄 모른다. 마침 뉴욕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원더풀 타운: 영화 속의 뉴욕>(12월1∼26일) 상영회는 이러한 맹목적 애향심을 시의적절하게 보여준다.

버스터 키튼 주연의 <카메라맨>(1928), 대공황 시기 최고의 뮤지컬영화 (1933), 성탄절 단골영화 (1947), 우디 앨런의 로맨틱코미디 <맨해튼>(1979), 리안의 데뷔작 <쿵후선생>(1992) 등등. 영화제 작품들은 말 그대로 ‘원더풀’했던 시절의 뉴욕을 회상하면서 현재의 상처를 보듬으라는 메시지를 잘 전달해준다. 로맨티시즘에 기대어 역사를 재구성하다보니 뉴욕을 배경으로 한 걸작이지만 고질적 사회문제인 빈곤과 범죄,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마틴 스코시즈의 <택시 드라이버>, 스파이크 리의 <똑바로 살아라> 등의 영화들은 당연히(!) 누락되었다. 하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선정된 작품들은 백인 중산층 이상 뉴요커들의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을 묘사하는 뉴욕영화의 계보를 보여주는 것 같아 오히려 흥미롭다.

‘멋있는 뉴욕’은 과거에만 속하지 않는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출연했던 배우 겸 감독인 에드워드 번즈의 신작 <사이드웍스 오브 뉴욕>은 모킹 다큐멘터리 형식의 인디영화이면서 동시에 앞서 말한 로맨틱 뉴욕영화의 계보를 충실히 잇고 있다. 비록 테러 이전에 만들어졌지만 영화는 중간중간 쌍둥이 빌딩을 배경으로 한 인터뷰장면을 자르지 않고 뉴욕이 얼마나 열정적인 도시인가를 주인공들의 시끄러운 입을 빌려 강조하는 등, 9·11 테러에 대한 메시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즉 아무리 테러가 기승을 떨쳐도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섹스하라, 그것이 바로 줄리아니 시장이 그리도 강조한, 뉴요커가 돌아가야 할 ‘정상적’ 삶이다. 이 상투적 연애담이 나름대로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은 영화 외적인 요소 탓이다. 요새 같은 때에는 사랑과 섹스를 역설하는 것조차 애향심의 발로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테러 사건 뒤에도 면면히 흐르는 로맨틱 뉴욕영화의 계보는 백인 중산층의 판타지라는 정장을 걸쳐야만 ‘원더풀 타운’이라는 이미지 속으로 입장할 수 있다는 진리를 재확인시켜준다. 그 이미지는 넘치는 사랑과 세련된 위트와 약간의 섹스와 이 모든 것들의 적당한 뒤범벅인 로맨스가 지배하는 이미지이다. 뉴요커가 아닐지라도 과연 그 누가 이 이미지를 마다할 수 있으랴.

뉴욕=옥혜령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