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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고> `지존, 악을 응징하다`
2001-12-07

10대~20대 초반의 관객이 올해 가장 보고 싶다는 한국영화 <화산고>가 7일 개봉한다. 고교생들이 장풍을 쏘고 교실 천정을 붕붕 나는 무협 액션을 디지털로 재현한다는 이 영화의 기본 발상은 흥미로운 만큼이나 황당하다. `학원무협'이라는 처음 듣는 틀 안에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 화면은 의도대로 나올까. 우려하는 이도 있었지만 <화산고>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우리 상업영화의 지평을 넓힌 개가로 꼽아도 될 만큼 신선한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한다.

●때는 화산 108년?

영화가 시작하면 보도 듯도 못한 연호가 나온다. `화산 108년` 시공간의 개연성을 털어버리고 순수한 오락의 세계로 들어가겠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정작 오락을 위해 필요한 갈등구조의 개연성과 캐릭터의 질감은 놓치지 않는다. 버릴 것과 버리지 않을 것을 능숙하게 구별하는 솜씨에서부터 <화산고>는 대다수 팬터지 영화들보다 한 수 위다.

`화산 108년`에 김경수(장혁)는 고등학교를 7번째 퇴학당하고 `문제아`들이 모인 화산고등학교로 전학을 간다. 화산고 학생들 사이에선 결투가 끊이지 않는다. 제1고수는 송학림(권상우)이고, 역도부 주장인 장량(김수로)이 1인자의 자리를 넘보며 음모를 꾸민다. 이 두 학생 사이에 정파와 사파의 전선이 형성되지만 경수는 어느 쪽에도 끼어들지 않는다. 또다시 사고쳤다가 퇴학당하기 싫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어릴 때 번개를 맞아 자신도 통제하지 못하는 엄청난 내공을 지닌 잠재적 영웅이다. 화산고 제1의 미인이자 경수에게 호감을 느낀 유채이(신민아)가 경수를 정파쪽으로 끌어들이려 하지만, 경수가 나서는 것은 잔혹한 학원진압 전문교사 마방진(허준호)이 등장한 뒤이다. 그러니까 진짜 사파, 내지 악당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황야의 무법자>+<드래곤 볼>+<매트릭스>…

권력 다툼에 무심하던 잠재적 영웅이 가공할 불의를 보고서 마침내 결투에 나서는 이 구도는 무협지와 마카로니웨스턴이 공유하는, 액션활극의 맛을 한껏 보여준다. 얼핏 황당해 보이는 <화산고>의 스토리라인은 이 고전적 구도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다. 바탕이 튼튼한 탓에 동서양을 뒤섞은 퓨전 액션이 자연스럽고 경쾌하게 녹아든다. 경수가 화산고에 들어설 때, 시체가 즐비한 무법천지의 마을에 들어서는 <황야의 무법자>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연상시킨다. 좀처럼 싸움에 휘말리지 않는 모습도 비슷하다. 하지만 총 대신 주먹과 발을 쓰고 장풍을 날리는 액션은 만화 <드래곤 볼>을 영화로 옮겨놓은 것 같다. 장풍의 파장이 특수효과로 살아나고, 장풍이 수면에 닿을 때 물기둥이 치솟는다. 10m 높이에서의 공중제비를 느린 화면으로 잡아낼 때는 <매트릭스>의 유연한 동작이 살아난다. 만화적 연출을 도입해 인물의 표정을 코믹하게 잡아내고,액션의 박력은 살리되 잔인한 느낌은 덜어냈다.

●새로운 시도들

<화산고>는 개척정신이 돋보이는 영화다. 상하수직 뿐 아니라 좌우수평으로 움직이는 와이어 액션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조명비용 4억원도 국내 최고이며, 수중 액션신에 동원한 살수차량도 최대 규모다. 대다수의 배경을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뒤, 실사 촬영장면을 전부 컴퓨터에 집어넣어 합성하고 디지털로 출력했다. 새로움은 기술적인 데 그치지 않는다. 암기와 주입식 교육을 중시하는 화산고 교감이, 자유방임주의자인 교장을 가둬놓고 마방진을 고용한다. 마방진은 학생의 두뇌활동 능력을 마비시키는 극약처방도 서슴지 않는다. 마방진과 교감을 물리치는 <화산고>의 이야기는 격리시키고 가둬두기에 급급한 청소년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