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국내뉴스
광주국제영상축제에서 만난 감독-로랑 캉테
2001-12-11

노동영화? 남이 안하기에 한다

지난 7일 광주국제영상축제의 개막작으로 상영된 <시간의 사용>의 감독 로랑 캉테(40)는 요즘 보기 드물게 노동 문제에 주목하는 신진 감독이다. 이 프랑스 감독은 99년 <인력자원부>를 통해 계급적 자부심이라고는 찾기 힘들게 된 지금의 노동현장과 노동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춤으로써 평단의 격찬을 받으며 데뷔했다. 2년 뒤, 직장에서 해고된 사실을 가족에게 숨기고 거짓말로 연명하며 살아가는 한 펀드 매니저의 이야기 <시간의 사용>을 베니스영화제에 출품해 그랑프리인 `오늘의 사자상'을 받고 국제적 명망가 감독 대열에 합류했다.

“요즘은 영화들이 사회문제, 노동문제에 대해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하자고 생각했다. 어떤 사회적 그룹과 그 안에 속한 개인 사이의 갈등은 나의 주된 관심사이다. 노동자 계급을 택한 건, 그런 갈등이 더 부각될 수 있어서이기도 하다.”

노동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면에서 캉테는 종종 영국의 좌파 감독 켄 로치와 비교되곤 한다. “켄 로치는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감독이지만 나와 비교할 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는 투사였고 영화마다 메시지가 분명하다. 나는 질문은 던지지만 대답은 주지 않는다. 물론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그걸 영화로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캉테는 분명히 로치보다 냉정하다. 노동계급을 위로하고 부추기기보다 `노동자=패배자'가 되다시피 한 지금의 노동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요즘 프랑스에서는 노동자라는 걸 부끄럽게 여긴다. 젊은 노동자들은 블루 칼라의 옷을 입지 않으려고 하고 학생들은 아버지 직업난에 전 같으면 `노동자'라고 쓸 것을 지금은 `기술자' 등으로 쓴다. 불행한 일이지만, 나는 적극적으로 끼어들지 않으려 했다. 그게 내 영화의 문법에 맞는다.” 대신 캉테는 노동 사회에서 마땅한 자기 좌표를 찾지 못하는 개인을 통해 현대사회의 소외를 깊이 들여다본다. <인력자원부>의 주인공 대학생은 파업에 뛰어들지도 못하고 완전히 벗어나 있지도 못한다. <시간의 사용>의 펀드 매니저는 숨가쁜 직장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거짓말을 선택했지만 결국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만다.

“그룹 속에 있으면 항상 힘들다, 그 속에 나를 의지하는 게 편했던 적이 없다”는 캉테는 자신이 직접 사회에 참여하는 운동을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회에서 자기 위치를 찾지 못하는 개인에 주목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내 영화가 사회 문제와 무관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임범 기자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