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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영화가 비디오가게로 바로 가지?
2001-12-18

극장에 걸리거나 공중파를 타는 일 없이 바로 비디오로 출시되는 외국 영화들 가운데 눈여겨 볼 만한 것들이 꽤 있다. 지난달 나온 <더티 픽처>(2000년)는 텔레비전용 영화임에도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묵직한 주제의식이 잘 살아나 있다. 곧 출시될 <크루>(2000〃)는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있는 코디미 영화지만 리차드 드레이퍼스, 버트 레이놀즈 등 노년의 배우들이 마피아 동지로 다시 모여 벌이는 한판 소극이 나이든 관객의 향수를 자극할 법하다.

<더티 픽처>(사진)는 1990년 미국 신씨네티 뮤지엄에서 개최한 로버트 메이플쏘프의 사진전을 주 검찰이 음란죄로 기소하면서 벌어졌던 실제 법정 사건을 다뤘다. 80년대말 에이즈로 숨진 로버트 메이플쏘프는 성을 중요한 주제로 다루면서 동성간의 성행위 장면, 어린이의 성기가 노출된 사진 등을 찍어 논란을 빚어왔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미국의 예술박물관협회는 미국 순회로 유작전을 열기로 하고 제일 먼저 워싱턴을 선정했다. 그러나 보수적 정치인과 지역 유지의 반대로 행사는 불발되고 워싱턴 뮤지엄 관장이 해임돼버렸다. 두번째 전시 예정지인 신씨네티 뮤지엄의 관장 데니스(제임스 우즈)는 직간접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 박물관장들의 격려에 힘입어 행사를 열기로 결심한다.

이 영화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수반되는 개인적, 사회적 어려움들을 아주 잘 드러낸다. `음란'이라는 모호한 잣대 앞에 개인이 발가벗겨지고, `너는 가족도 없냐`는 식의 인신공격이 쏟아진다. 미국이라고 하지만 그 모멸적 메카니즘은 영화 <거짓말>이나 만화 <천국의 신화>의 논란 때 보였던 국내의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지금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당시의 부시 대통령은 메이플쏘프의 작품을 `쓰레기`라고 칭하면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너무 쌍소리가 될 것 같아 참는다, 여러분도 알 것이다`라고 말한다. 다큐멘타리처럼 실제 인물의 방송과 인터뷰를 삽입한 대목에서 보수적 인사들의 이런 독설이 난무한다. 반대로 영화배우 수잔 서랜든, 작가 샐먼 루시디 등이 메이플쏘프의 작품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다. 한 민주당 정치인의 말이 인상깊다. `미국에서 보수주의를 자처하는 이들은 정말 웃긴다. 실업이나 복지 등의 문제 앞에서는 시장에 맡기라며 개인을 무시하면서, 그들이 뭘 보느냐 라는 진실로 개인적인 문제에는 폭력적 간섭을 서슴지 않는다.` 주인공 데니스는 집에 걸려오는 협박전화와, `왜 이 싸움에 앞장서는 걸까'라는 회의를 극복하고 법정에 나서 결국 승소한다. 그 주장의 요지는, `표현의 자유는 특정 개인에게는 아무 상관 없을 수 있지만 모두에게는 가장 중요한 자유`라는 것이다.

<크루>는 무엇보다 리처드 드레이퍼스, 버트 레이놀즈에 더해 <매트릭스>의 캐리 앤 모스, <바운드>의 제니퍼 틸리 등 화려한 배역이 돋보인다. 내용은 지난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주연한 <스페이스 카우보이>와 마찬가지로 퇴역한 마초들이 마지막으로 한판 벌이는 인생 황혼기의 연가다. 그러나 이미 늙은 탓에 이 마초들의 패기는 공격적이라기보다 아련한 페이소스를 풍긴다. <스페이스 카우보이>의 노인들이 젊은 시절 우주 비행사였던 데 반해 <크루>의 노인들은 전직이 마피아다.

바비(리처드 드레이퍼스)와 조이(버트 레이놀즈) 등 60대 노인 4명은 한때 화려했지만 모두 감옥에 갔다 나온 뒤 지금은 마이애미의 싸구려 호텔에 살면서 버스 운전사, 버거킹 점원 등으로 일한다. 갑자기 관광붐이 일면서 이 싸구려 호텔의 집값이 올라 쫓겨날 지경에 이르자 일을 꾸민다. 시체 보관소의 시체 한구를 훔쳐와 엽총으로 머리를 날린 뒤 호텔 프론트에 버려둔다. 마피아 조직 범죄로 위장해 주민들을 이주시켜 버리려는 속셈이었는데, 시체의 신원이 마약조직의 보스로 밝혀지면서 일이 꼬인다. 중간중간의 대사나 유머가 유쾌하고 짭짤하다.

임범 기자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