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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감독들 `스크린에서 만나요`
2002-01-18

독립영화 감독들이 잇따라 극장 나들이에 나선다.등급보류영화 전문감독 이지상, 동성애·원조교제 등 심상치 않은 소재에 몰두해온 이송희일, 지하창작집단 `파적`과 계간 <독립영화>를 이끌어온 김정구, 10년 가까이 단편영화만 만들어온 유상곤 등 독립영화계의 문제 감독 4명이 만든 옴니버스 영화 <사자성어>가 오는 28일 코리아 닷컴, 라이코스 등 인터넷 극장의 온라인 개봉을 거쳐 2월말 극장에 걸린다. 또 뮤직비디오 감독 강론이 인디 밴드 크라잉 넛을 출연시켜, 그들의 소시적 영웅 이소룡을 찾아나서게 하는 황당무계한 이야기 <이소룡을 찾아랏!>도 오는 26일 서울 동숭동 하이퍼텍 나다에서 개봉한다. 영화의 완성도 여부를 떠나 각종 매체를 통해 이름은 알려졌으나, 막상 일반 관객이 접할 기회가 없었던 독립영화 감독들의 영화를 극장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건 반가운 일이다.<사자성어> 이 영화는 엄밀히 말해 독립영화가 아니다. 100분 분량의 에피소드 4개를 디지털로 찍는데 들어간 비용 2억5천만원을 충무로 자본들이 대고 배급·마케팅도 영화사 스타맥스가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도발성 짙은 감독들이 `성`이라는 소재 하나만을 두고 저마다 자유롭게 에피소드를 만들어 묶는다는 기획은 충분히 신선하다.4개의 에피소드 중 짜임새와 이야기의 자기완결성이 가장 돋보이는 건 유상곤 감독의 `BODY`이다. 소아마비 소녀와, 몸을 팔며 사는 40대 중년 여성이 앞집 뒷집에 산다. 각자의 몸은 소녀에게는 수치스러운 존재일 뿐이고, 중년 여성에게는 생계수단으로 전락했다. 이 둘이 목욕탕에서 우연히 만난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하지만, 중년 여성이 소녀의 목욕을 도와주고 서로 몸을 씻어준다. 대사가 거의 없는 가운데 번갈아가며 화면에 비쳐지는 중년 여성의 뚱뚱한 몸과 소녀의 마른 몸이 어느 순간부터 에로틱 여부를 떠나 따듯한 온기를 전한다. 이들의 목욕은 잠시 동안이라도 각자의 몸에 대한 열등감을 씻어내 줄 것 같다.30대 여성과 남자 고등학생의 원조교제를 다룬 <굿 로맨스>로 지난해 한국독립단편영화제 대상을 받은 이송희일 감독은 이번 에피소드 `마초 사냥꾼들`에서도 무척 논쟁적인 소재를 동원했다. 남성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여성들에게 성폭행과 희롱을 일삼는 악질 `마초`들에 대한 고발을 접수받는 인터넷 사이트 `마초 사냥꾼들`의 운영자들이 고발된 마초들을 납치해 자기들끼리 재판을 열고 처벌한다. 처벌내용은 여장을 시켜 춤추게 하고 그 장면을 인터넷에 띄워 공개하는 것. 이들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른 한 남자가 군대 친구들을 동원해 보복에 나선다. 그러면 이들은 보복에 성공할까. 감독의 의도는 “남성들이 불쾌한 감정을 가졌으면 더 좋겠다”는 것인데.<둘 하나 섹스> <돈오> 두편이 강도 높은 성표현으로 등급 보류처분을 받았던 이지상 감독의 <사자성어>는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를 표방한 토속적 에로틱 코미디로 성표현 수위는 여전히 높다. 김정구 감독의 `하지'는 거리낌 없는 섹스를 소통의 한 수단으로 삼는 가상 사회의 풍경을 가볍게 스케치한 에로틱 팬터지이다. 인터넷 관람안내 www.sexy4.co.kr <이소룡을 찾아랏!>

연출가 출신 강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그의 `서울에 관한 신기한 이야기` 삼부작 가운데 첫 편이다. 한국 인디 록밴드의 대표주자인 크라잉 넛의 네 멤버(한경록 박윤식 이상혁 이상면)가 주연한 이 작품은 거대도시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말하는 서울 이야기다.빌딩 화장실에서 설탕물을 끓여 머리 빳빳하게 세우고 세운상가 악기점에서 하모니카나 훔치다가 밤이면 클럽에서 공연하는 이들의 일상에 `연쇄살인`이라는 무시무시한 일이 닥친다. 이들의 공연을 보고 나온 관객까지도 연쇄살인범에 희생당한다. 단서는 현장에 남아 있는 이소룡과 관련한 표식뿐. 크라잉 넛의 베이스 연주자 경록은 이소룡의 사진을 들고 의심스런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인도에 빠진 아저씨, 쿵푸 도장 관장 아저씨, 별 셋 달린 제복 입고 자장면 배달하는 아저씨, 다리에 병적인 집착을 보이는 아가씨 등. 이야기는 처음엔 미스터리 극처럼 전개되지만 곧 허망하게도 범인이 잡혔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이 영화가 일정한 줄거리를 추구하는 게 아님을 보여주는 장치다. 이 과정에서 경록이 목격한 건 서울의 낯선 얼굴들이다. 그것은 할리우드로 간 홍콩 배우 이소룡(브루스 리)의 마지막 작품 <용쟁호투>에 나오는 사방이 거울로 이뤄진 방에서의 혈투 장면처럼 자기의 낯선 얼굴이기도 하다.알레고리와 대상 사이의 간격이 너무 멀어 보는 이의 긴장을 떨어뜨리는 건 조금 불만이지만, 모노톤의 스틸사진으로 전개되는 다리에 집착하는 아가씨의 삽화 등 실험적 요소는 인상적이다. 펑키 록 팬이라면 크라잉 넛의 라이브 장면만으로도 배부를지 모르겠다.임범isman@hani.co.kr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