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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폐막, <야생벌>등 3편 타이거상 수상, <고양이를 부탁해>는 특별언급
2002-02-06

낯설고 아름다운, 불명(不明)의 영화들을 찾아서어찌 보면 로테르담영화제는 좀 싱거운 영화제다. 다른 영화제들이 할리우드 스타를 모셔다가 화려한 축하공연을 해도, 살아 있는 최고의 거장들의 신작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치고 받아도, 로테르담에서 발굴한 유망주를 곶감 빼먹는 쏙쏙 `스카우트`해가도 이 영화제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독립영화, 젊은 영화, 대안영화, 실험영화, 새로운 영화, 다양한 영화, 비서구권 영화 등은 로테르담영화제가 추구하는 이상을 표현하는 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제의 규모와 권위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이 영화제를 찾은 게스트들은 5천명에 달하고, 34만5천여명의 관객이 극장을 들락거렸다. 올해는 재정이 늘지 않아 부득이하게 장편영화 수를 줄였다고 하는데도 200편에 가까운 작품이 영화제를 찾았고, 단편영화와 뮤직비디오 프로그램까지 더하면 500편이 넘는 작품이 20여개의 공간에서 상영됐다.생소한 프로그램, 열정적인 관객

이처럼 갈수록 많은 게스트들과 관객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로테르담이 30년이 넘도록 흔들리지 않는 노선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이 기나긴 세월 동안 로테르담은 광의의 독립영화를 지키는 보루 역할을 해왔고, 이를 현대영화의 주요한 흐름 중 하나로 만들어왔다. 또 로테르담은 숱한 작가들을 발굴해왔고, 그들의 유명세를 이용하려 하기보다는 새로운 작가를 지속적으로 발굴함으로써 영화제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왔다.올해의 프로그램에서도 이들의 노선은 여전히 적용된다. 경쟁 부문인 VPRO 타이거상 후보작만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지역적으로 한국, 중국 같은 동아시아에서부터 동남아시아인 인도네시아, 남미, 동구, 서구, 미국 등 고루 분포돼 있으며, 세개의 단편으로 이뤄진 독특한 구성의 <노고>(사비네 히블러, 게르하르트 에르틀),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혼재돼 있는 <여기서 어디로>(글렌 룩포드), 세계의 마이너리티 중에서도 마이너리티인 쿠르드족의 이야기 <지얀>, 25살의 미국 감독 앤드루 레파스키 맥엘리니가 23살 때 만든 고딕풍의 호러영화 <시체들의 연대기> 등 16편 대부분이 모두 지향하는 바가 다르지만, 기존 영화에선 흔히 볼 수 없던 요소들을 꾹꾹 눌러담았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비경쟁 부문인 메인 프로그램으로 오면 더욱 다양하고 현란하다. 미이케 다카시, 라울 루이즈, 피터 컨, 클레어 드니, 카트린 브레야, 프루트 챈 등 명성있는 감독들의 작품에서부터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감독의 작품들이 대평원처럼 펼쳐져 있다.사실 정말 희한한 것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이처럼 생소하고 난해하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개성이 강한 영화들을 상영하는데도 거의 모든 상영관을 꽉꽉 메우는 관객의 존재다. 로테르담의 관객은 진지하기로 소문나 있는데, 어쩌면 이는 오랜 기간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는 예사롭지 않은 영화들에 익숙해져버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매일 집계되는 인기투표에서 줄곧 상위권을 유지해온 작품의 면면을 보면, 이들의 성향은 쉽게 짐작된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받았던 <아타나루아트, 가장 빨리 달리는 이>는 캐나다 에스키모인들의 삶을 그린 작품. 이 영화의 감독인 자카리아스 쿠눅 회고전을 통해 소개되는 1995년에 만든 `페이크 드라마` <아우어 랜드> 시리즈도 덩달아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DJ들의 현란한 디제잉과 스크래치를 보여주는 더그 프레이의 다큐멘터리 <스크래치>, 연극 원작을 디지털 화면으로 담은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테이프>, 마틴 스코시즈의 4시간5분짜리 다큐멘터리 <나의 이탈리아 여행> 등도 톱텐을 오르락내리락했던 작품들. 관객은 진지할 뿐 아니라 광적이기도 하다. 오후 9시부터 시작되는 매표를 위해 기다란 줄 뒤에 한 시간 남짓 기다리는 모습은 부산영화제 등을 제외하곤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광경이다. 오후 6시 이후의 티켓은 좀처럼 구하기 쉽지 않고, 그 이전 시간대의 작품도 화제에 오른다거나, 관객투표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면 일찌감치 표가 매진돼버려 관객은 동분서주해야 했다.영화의 근본적인 의의를 묻는 작품들 줄이어경쟁, 메인 장편, 메인 단편이라는 `기본메뉴` 외에 이번 영화제가 특별히 신경을 쓴 것은 스페셜 프로그램이었다. 뮤직비디오를 심도있게 파고드는`Exploding Cinema`부문이나 정치와 영화간의 함수관계를 풀어보고자 한 `Desert of the Real`, 영화에 관한 영화들을 모은`Looking Glass`,실험영화계의 전설적 존재 스탠 브래키지, 캐나다 에스키모에 관한 영화만을 찍는 자카리아스 쿠눅, 유고에서 반정부적인 영화를 제작해왔던 고란 마르코비치 등의 회고전 등 모두 알찬 내용이었지만, 무엇보다 관심을 끌었던 프로그램은 `What (is) Cinema`였다. 말 그대로 영화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이 프로그램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영화는 어떤 변화를 겪었고, 또 겪을 것인가를 깊이있게 조망하기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 이건 나머지 스페셜 프로그램과 전시 프로그램에까지 영향을 끼치며, 이번 영화제의 화두로 떠올랐다.이 프로그램은 총 8개의 주제를 다뤘는데, 다양한 대체 매체가 만들어지는 상황의 영화를 조망하는 `영화의 해피엔드`, 영화와 나머지 예술간의 관계를 파고드는 `영화와 7가지 예술`, 디지털영화에 관한 고민을 담은 `디지털 리얼리티`, 영화와 정치의 관계를 탐구하는 `정치적 의제`, 합작이나 인터넷 배급, 세계화 등으로 인해 점차 국경이라는 의미에 얽매이지 않는 영화에 관해 조명하는 `글로벌 익스체인지`, TV와 영화의 관계를 분석하는 `멀티 비전스`, 아시아영화에 관해 집중하는 `이스턴 퍼레이드`, 작가에 관해 다시 생각해보는 `작가를 찾아서` 등이 그것이다.각각의 프로그램은 이들 주제와 관련되는 영화를 상영한 뒤 토론을 통해 나름의 결말을 맺었는데, 워낙 방대한 주제인데다, 무언가 결론을 얻기에는 참석한 패널들이나 주최쪽의 준비가 부족한 듯 보였다. 이중 관심을 모았던 토론은 1월28일의 `정치적 의제`와 31일의 `이스턴 퍼레이드`였다. 무게있는 패널들이 자리를 메웠던 때문이기도 했다. `정치적 의제` 토론에는 이번 영화제에 <내비게이터>라는 영화를 출품한 영국의 켄 로치 감독과 미국의 평론가 짐 호버먼, 고란 마르코비치, <지얀>의 자노 로세비아니 감독 등이 참여했다. 31일의 토론에는 영국의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 대만의 허우샤오시엔 감독,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인도네시아의 난 아크나스 감독, <필름메이커> <필름 코멘트> 등의 기고가 척 스티븐스 등이 참여했다.이들 토론 역시 화려한 면면에도 불구하고 각각 “영화와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으며, 정치적으로 중립지대에 속하는 영화는 없다”, “한국을 제외하면 아시아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은 날로 어려워지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등 다양한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라는 정도의 결론만을 얻어 아쉬움을 남겼다. 사이먼 필드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공론화한다는 점에 의의를 둔다”고 말했다. 비록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할지라도 각각의 주제에 대해 24개의 정리된 질문을 작성했다는 점이나 영화의 본질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정면돌파하려는 자세만큼은 돋보이는 행사였던 때문에 “로테르담이 아니었다면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라는 평가를 얻었다.이외에도 국립건축박물관에 설치미술 작품처럼 만들어진, 도시에 관한 뮤직비디오를 소개하는 프로그램 `City Scape`나 영화의 본질에 대해 자문하게 하는 설치미술 전시회 `Other than Film` 역시 흥미로운 자리였다. 특히 책 모양의 스크린 위에 슬라이드가 자동으로 돌아가며 그림을 비추는 형식을 가진 `낯설고 아름다운, 불명(不明), 복잡한 슬라이드 투사`라는 제목의 작품은 인상적이었다. 책 위에 투사되는 내용은 일종의 내러티브가 담겨 있는 글자와 사진이었다. 슬라이드가 차례로 돌아가면서 우리는 이야기 비스무레한 것을 보게 된다. 과연 이것은 영화인가, 아닌가, 만일 영화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그리고 도대체 영화란 무엇이란 말인가, 등의 질문을 던지게 하는 논쟁적인 작품이었다.로테르담=문석 ssoony@hani.co.kr* 제31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시상결과*VPRO 타이거상<야생벌>보단 슬라마(체코)<매일 신은 우리에게 입맞춤한다>시니사 드라긴(루마니아)<투센란드>유게니 얀센(네덜란드)PIFRESCI(국제평론가)상<나의 형 뱀파이어>스벤 타디켄(독일)▶로테르담의 한국영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