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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가 아닌 `꿈`을 찍는다
2002-03-06

1982년 11월 14일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레이 맨시니와 김득구의 WBA(세계권투협회) 라이트급 세계타이틀 쟁탈전. 한국 최초로 라이트급 세계 챔피언에 도전한 김득구는 14회에 KO패한 뒤 병원에 실려갔다가 며칠 뒤 숨졌다. 20년 가까이 흐른 지난 1일, 로스앤젤레스 근교 세펠베다 댐 옆에 새로 만든 특설링 세트에서 이 비운의 복서의 마지막 경기를 재현하는 작업이 시작됐다.김득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챔피언>의 곽경택 감독은 800여명의 미국인 엑스트라를 동원해 6일 동안으로 예정된 김득구와 맨시니 경기장면 촬영의 `레디 고'를 외쳤다. 곽 감독의 전작 <친구>에 나왔던 장동건씨가 제작진을 격려하기 위해 촬영장에 와 있었다. 이날 찍은 건, 김득구의 등장을 환호하는 관중들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담은 샷으로 생생하고 자연스러운 관중들의 환호 모습을 뽑아내기 위해 곽 감독의 이런저런 주문 아래 10여 차례 이상 촬영이 반복됐다.“지금 눈에 보이는 건 허허벌판에 세워진 링과 스탠드에 앉은 800명의 외국인 뿐이지만, 실사로 찍은 당시 라스베가스의 풍경과 컴퓨터 그래픽 합성을 통해 스크린에는 8000여명이 꽉 들어찬 실제 경기장 모습이 재현될 겁니다.” 곽 감독의 촬영현장에는 다른 촬영장에서는 보기 힘든 기계가 한 대 더 놓여있었다. 자체적으로 개발해 <친구>에서도 사용했던 현장편집기다. 그는 이걸 가지고 방금 찍은 장면을 그 자리에서 편집해보고, 이미 찍은 장면을 이렇게 저렇게 붙여보고, 미리 선곡해 놓은 음악까지 입혀본다. 촬영을 끝내고 편집을 시작하는 다른 감독들과 달리 곽 감독은 이것저것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촬영과 편집을 병행했다.“이번 영화에서는 권투 장면을 네 가지 형식으로 보여줍니다. 김득구가 동양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는 김광민전은 극한까지 이른 처절함에 포인트를 두었고,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이상봉과의 스파링 장면은 서로가 벌이는 기싸움, 맨시니전은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강하고, 그 외의 영화는 가능하면 멋있게 찍었습니다.” 곽 감독은 생동감 있고 통쾌한 액션 장면 연출을 위해 정두홍 무술감독이 구상한 국내 12경기와 맨시니전의 액션 동작을 미리 찍어 컴퓨터 상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모션캡처방식을 국내 영화사상 처음으로 시도하기도 했다.다른 어떤 권투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권투신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자신하면서도 곽 감독은 <챔피언>이 결코 권투영화는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챔피언>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동해바다에서 태양을 먹고 자랐던 한 소년의 꿈을 그린 영화입니다. 그 소년의 꿈은 바로 다음 세대를 위한 희망이기도 하구요. 사실 김득구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어 그를 캐릭터화하는 것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고민이 있을 때마다 그의 친형과 그의 노트, 가장 친한 친구 등 그에 관한 것들이 스스로 나타나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최고가 되어 있는 사람들 보다는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는 분들께 이 작품을 바친다”고 전했다.<챔피언>은 5월말 촬영을 끝내고 7월쯤 개봉할 예정이다. 미국 현지촬영에 들어간 17억원을 포함해 총제작비는 70억원에 이른다.로스앤젤레스/신복례 기자borae@hani.co.kr▶ <챔피언> 김득구역의 유오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