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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28분 삭제 개봉에 관객들 분노, <존 큐>도 3분 삭제
2002-03-12

더러운 가위손을 잘라버려라가위질 쇼는 계속된다. 지난 3월1일 개봉한 <알리>가 삭제상영으로 파문을 일으킨 데 이어 3월15일 개봉작인 덴젤 워싱턴 주연의 <존 큐> 역시 가위질된 채 개봉한다. 미국 내 극장 상영시간이 118분인 <존 큐>는 최근 시사회에서 일부 장면이 잘린 채 상영됐다. 수입사인 씨네월드가 배포한 보도자료에 나온 상영시간은 100분. 씨네월드는 “보도자료에 나온 상영시간은 <존 큐> 제작과정에 나온 예상 러닝타임을 실수로 옮긴 것일 뿐”이며 “시사회에서 틀었던 프린트는 115분 정도이고 잘린 장면은 토크쇼 진행자 제이 레노가 나오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들어낸 부분은 3분이 안 되며 삭제 이유는 최근 동계올림픽 판정에 대해 한국인을 모욕하는 발언을 한 제이 레노의 등장이 정서상 관객과 맞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라는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삭제상영 자체는 기정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알리>문제로 시끄러운 마당에 대단히 용감한 결정이다.<존 큐>에 대해서는 아직 관객이 삭제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별다른 반응이 없을 수밖에 없지만, 지난 주말에 개봉한 <알리>는 최근 각종 인터넷 영화 관련 홈페이지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28분 삭제된 채 상영된 사실이 알려지자 관객의 분노는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제 돈 내고 시간 들여서 해당 영화를 보러오는 일반 관객에게 제대로 된 영화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한마디로 주객이 전도되었다고밖에는 할말이 없군요. 정말 생각만 해도 속이 부글부글 끓는군요. 언제까지 이런 만행을 그대로 묵과해야만 하는 겁니까?” <씨네21> 사이트에 touzi라는 이름으로 등록된 어느 관객의 항의는 삭제된 필름으로 영화를 본 대다수 관객의 입장이기도 하다. “이것은 명백한 사기입니다”(ihdlpsg), “<알리> 관람 거부운동합시다”(thx1138), “너에게 가위를 보낸다. 영화사에 날이 바짝 선 큼직한 재단가위를 보내주고 싶다. 쫄까? 좋아할까?”(hj612) 등 반발은 여러 가지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누구 맘대로 28분씩이나물론 그간 수입사나 극장이 임의로 영화를 삭제한 경우는 <알리>나 <존 큐>말고도 상당히 많다. 가장 최근 사례로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9분이 잘린 채 상영됐다가 종영 무렵 삭제사실이 밝혀졌다. 원래 상영시간이 145분인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한 군데라도 극장을 더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필름에 손을 대야 했다고 고백했다. 그렇다면 <알리>에 가위질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수입사인 아름다운 영화사가 밝힌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원래 상영시간인 151분으로는 하루 5회 상영이 불가능했고 둘째 모니터 시사결과 지루한 부분이 있어서 잘랐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러닝타임만 줄이면 극장도 많이 확보하고 흥행도 잘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개봉결과는 이런 예측을 빗나갔다. 개봉 주말 이틀간 <알리>는 서울 1만8900명을 동원하며 3월 첫주 박스오피스 6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영화사의 기대를 무너뜨린 이런 결과는 삭제상영 사실이 알려지면서 좀더 심각해졌다. <알리>는 1주 상영을 넘기지 못하고 대부분 극장에서 간판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만약 <알리>를 원판대로 상영했다면 흥행성적이 이보다 나빴을까? 참고로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흥행수익을 올린 영화는 <타이타닉>은 러닝타임이 199분이었고, 2000년 외화 흥행 1위를 차지한 <글래디에이터>는 러닝타임이 154분이었다.한 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는 과연 누가 <알리>의 삭제 결정을 내렸는가이다. 대외적으로 <알리>의 수입사는 아름다운 영화사로 돼 있다. 지난해 창립한 신생영화사 아름다운 영화사의 첫 작품이 <알리>인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영화사가 독단적 판단으로 필름에 가위질을 했다고 믿기는 힘들다. 실제로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알리>의 수입사는 코리아픽처스이며 수입가를 지불한 것도 코리아픽처스이다. 연초에 코리아픽처스는 “<챔피언>을 만들면서 비슷한 권투영화 <알리>를 수입, 배급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는 곽경택 감독의 반발 때문에 <알리>를 아름다운 영화사에 넘겼다고 밝혔다. 엄밀히 말하면 아름다운 영화사는 <알리>의 개봉 관련 업무를 대행하는 회사로, 독단으로 삭제결정을 할 형편이 아닌 것이다. 코리아픽처스는 “모든 업무를 아름다운 영화사에 넘겼다. 우리는 삭제결정에 개입한 바 없다”고 밝혔지만 코리아픽처스가 관여한 혐의를 벗기는 힘들다. 일각에서 코리아픽처스가 삭제상영 뒤 파문을 우려해 아름다운 영화사라는 허울을 내세운 게 아니냐고 지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네티즌들, “명백한 사기다” 반발<알리> 삭제파문이 확대되자 영화사는 3월8일부터 원판 복원 상영을 하겠다고 결정했다. 대다수 극장에서 간판을 내리기 때문에 명동 캣츠21 한 극장에서 151분 원판을 상영하고, 이미 잘린 영화를 본 관객의 경우 입장권을 가져오면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사후약방문이긴 해도 관객의 항의가 왜 필요한지 보여준 셈이다. 이번 사건을 지켜본 사람들이 입을 모아 주장하는 것은 차제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96년 헌법재판소에서 ‘사전심의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공연예술윤리위원회(공륜)의 가위질을 막은 것처럼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하거나 영화 관객의 권리를 보호하는 운동을 벌이자는 제안이다. 법적 조치로서 가장 강경한 것은 “삭제사실을 숨기고 개봉했다면 사기죄에 해당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각종 매체를 통해 상영시간이 151분으로 공개되었으며, 151분의 상영시간이 실제로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해 배급사는 그 어떤 언급도 없었습니다. 배급사는 151분짜리 필름을 극장에 보냈지만 극장쪽에서 무단 삭제하고 상영한 것인지, 아니면 극장에 배급된 필름이 이미 삭제된 것이었는지에 대한 해명도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관객은 영화가 잘린지도 모른 채 영화를 봤으며, 그렇게 본 사람들은 사기(사람을 속여 착오를 일으키게 함으로써, 일정한 의사표시나 처분행위를 하게 하는 일)를 당한 것이고 삭제된 영화임을 숨기고 입장료를 챙긴 배급사와 극장은 형법 제347조에 언급되어 있는 ‘사람을 기망(欺罔)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인 사기죄를 저지른 것일 수도 있습니다”(younginn)라는 한 관객의 날카로운 지적은 해당 영화사의 가슴을 뜨끔하게 할 만하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것은 이론적인 가능성일 뿐이다. 영화 관련 소송에 해박한 조광희 변호사는 “영화관람행위도 일종의 계약이다. 계약과정에서 한쪽이 속였다면 형법이든 민법이든 문제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조금 더 복잡하다. 거래마다 편차가 있기 때문에 28분 삭제사실에 대해 법원이 사기죄까지 인정할 것인지는 장담하기 힘들다”고 말한다.당장 법률적 강제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인데다 이런 일에 발벗고 나서는 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같은 일이어서 응집력을 발휘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조광희 변호사는 “실제로 소송에서 승리할 것인지와 무관하게 관객이 뭉쳐서 어떤 요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영화사를 압박하는 효과적인 수단일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알리>의 복원 상영 결정도 관객의 항의가 거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네티즌의 목소리가 영화 선택의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른 지금 어떤 영화사도 막무가내로 삭제상영을 계속 밀어붙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알리>를 삭제한 결정은 시대착오적 발상의 산물이기도 하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일부 관계자에 제한되던 시절에는 이런 식의 가위질에 무감각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 상황은 다르다. 관객 가운데 한 사람은 “영어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미국의 <알리> 영화 사이트를 찾아가서 글을 올리렵니다. 나라망신시킨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잘못한 건 잘못한 거죠. 우리부터 룰을 지켜야 반칙한다고 뭐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lipcy)라고 나설 정도다. 관객 모두가 자발적 감시자가 될 만큼 똑똑하다는 걸 <알리> 관계자들은 몰랐던 것 같다. 상황이 다르지만 <존 큐>가 예외가 될 수 있을까? 내러티브 전개에 큰 무리가 없는 일부 장면 삭제라고 하지만 <존 큐>의 관객도 삭제사실을 알고나면 가위질된 필름을 전제로 입장료를 지불하진 않을 것 같다. 영화가 예술이건 상품이건 제작진의 의도를 무시하며 흠집낸 물건에 애착을 보일 사람은 많지 않다. <알리> 때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사 역시 삭제사실을 자발적으로 밝힐 계획은 없었던 것 같다. 보도자료에 나온 상영시간과 미국 내 상영시간의 차이에 대해 추궁하자 삭제사실을 인정했다. 씨네월드 대표 이준익씨는 "<알리>와는 경우가 다르다. 스탠리 큐브릭 영화를 잘랐다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흥행만을 추구하는 영화에서 지역적 상황에 맞게 가위질하는 것은 충분히 용납할만한 일이다. 거꾸로 <달마야 놀자>를 수입한 나라에서 흥행을 위해 어떤 장면을 들어냈다 해도 나는 문제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상업영화를 거래하는 국제적 관행이다"라고 말한다. 그 엄청난 무지와 단세포적인 발상이 끔찍하다. 남동철 namdong@hani.co.kr<사진설명><알리>가 무려 28분 잘린 채 개봉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데 이어 <존 큐>도 일부가 잘렸다. 누구 맘대로 가위질인가?▶ 삭제상영의 연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