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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 다시 비상령
2001-03-16

한-미투자협정 앞두고 영화인들, 스크린쿼터 수호의지 밝혀

스크린쿼터 전선에 경계등이 켜졌다. 스크린쿼터문화연대(이하 쿼터연대)는 3월7일부터 있을 예정인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기간 중 스크린쿼터 축소, 폐지를 전제로 한 한-미투자협정 체결 움직임이 가시적으로 나타날 경우에 대비, 강력하게 대처하기로 했다. 2월27일 “2000년도 스크린쿼터 총결산” 기자간담회에서 쿼터연대 이창동 정책위원장은 “상식적으로 그러지 않겠지만, 스크린쿼터를 희생하고 정부가 미국과 협정 체결을 강행할 경우 곧바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 투쟁에 나설 것”임을 강조했다. 또한 쿼터연대는 3월5일 오전 11시 세종문화회관에서 “스크린쿼터는 양국간의 흥정이나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의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서한’을 낭독하기로 했으며, 이어 투자협정 체결 반대를 위한 대규모 집회를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쪽 입장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처럼 영화인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연초부터 일부 정부부처를 중심으로 한-미투자협정을 연내에 타결해야 한다는 말이 심심찮게 흘러나오는데다 첫 정상회담인 만큼 협정 체결을 위한 논의가 어떻게든 진행될 것이라는 점 때문. 쿼터연대 문성근 이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청와대 업무 보고시 외교통상부가 올해 안에 협정 체결이 필요하다고 건의했고, 최근 정부의 경제장관회의 석상에서도 이를 재확인, 미국쪽의 반대가 있을 때엔 스크린쿼터 문제에 있어 신축 대응하자는 논의까지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주한 미대사관의 신임 참사관과 서기관이 2월 중순 영화진흥위원회와 쿼터연대를 방문, 한국 정부의 영화산업 지원 현황 등을 파악하는 등 부시 행정부가 한국쪽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도 영화인들이 주시하는 부분이다.

물론 시장개방을 요구하는 미국쪽의 설득 논리가 변한 것도 사실이다. 미국이 올해 WTO 영상위원회에 제출한 문서에 따르면 “영상시장이 디지털 환경으로 대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스크린쿼터를 고수하겠다는 것은 시대적 흐름과 맞지 않는 것 아니냐”면서 “쿼터를 축소할 경우 정부의 보조금 지급이 가능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해당국의 문화정체성을 지키면서 미국과의 무역자유화를 통해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문서를 입수한 쿼터연대쪽은 “원칙적으로 변한 게 없다”는 입장이다. 쿼터연대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멀티플렉스 환경 속에서 쿼터제 현행유지의 필요성’이라는 제하의 반박문을 통해 “앞으로 미디어 시장은 인터넷, DVD 사용자가 늘면서 사적 영역이 무한대로 확장될 것이고 따라서 문화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공공의 노력이 극장이라는 공적 영역에 집중할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지적했다. 보조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스크린쿼터 장벽을 낮춰야만 멀티플렉스를 비롯한 투자유치가 손쉬울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쿼터연대 이창동 정책위원장은 “최근 2년 동안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스크린쿼터에 의해 강제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면서 “스크린쿼터 문제는 단순히 양국간의 합의사항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같은 뜻은 3월5일 안성기씨 등 영화인들을 통해 국회에 전달됐고,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심재권, 정병국 의원 등은 대통령의 방미 전에 이를 바탕으로 한 결의안을 마련키로 했다.

2001년에도 스크린쿼터 수호는 피할 수 없는 한국영화인들의 과제로 일찌감치 떠올랐다. 한 영화인은 “설사 한-미협정이 체결된다고 해도 국회비준 동의 절차가 남아 있다. 현재 미국과 쌍무투자협정을 맺은 나라 중 11개국이 비준을 거부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스크린쿼터 싸움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