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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눈`으로 찍은 세상
2002-03-22

`여성의 눈`으로 보는 영화, 그 걸판진 잔치인 제4회 여성영화제가 내달 4~12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과 하이퍼텍 나다에서 열린다. 새로운 물결, 아시아영화특별전(인도여성영화감독전), 한국영화회고전(성의 무법자로서의 여성들), 딥 포커스(걸 파워), 아시아여성영상공동체, 아시아 단편경선 등 모두 7개부문에 21개국 80여편의 작품이 출품된다. 특히 격년제에서 매년 개최로 바뀐 올해부터 영화제쪽은 옥랑문화재단과 함께 여성감독을 대상으로 매해 1편의 다큐멘타리를 선정해 제작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번 영화제에선 우선 개막작인 <제비꽃 향기: 아무도 믿지 않는다>처럼 계급과 인종 등 사회적 문제와 성차별의 문제가 교차하는 지점을 잡아낸 영화들이 눈에 띈다. `여성의 눈'이 포착하는 이야기가 해가 거듭될 수록 깊어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여성이 자신의 방식으로 영화를 생산·소비하는 것이 `또다른 사회운동'임을 강조하며 여성단체가 직·간접적으로 제작한 행동주의(액티비즘) 영화들을 대거 배치시킨 것도 특징이다. 멕시코 영화 <제비꽃 향기…>(감독 마리사 시스타츠)는 멕시코시티에서 증가하고 있는 성폭력 문제를 다루면서 빈곤이 어떻게 소녀들의 삶과 우정을 찢어놓는지 보여준다. 멕시코의 상류층 1인당 하루 소득은 106만원, 하류층의 소득은 7600원이다. 5%의 사람들을 위해 95%가 살아가는 그곳에서 사춘기 15살 소녀의 순결은 의붓 오빠 새 운동화 한켤레 값에도 못 미친다. 학교에선 거친 아이로 찍혀있고 집에선 온갖 가사일을 맡아야 하는 제시카에게 소중한 건 같은 반 친구 미리엄 뿐이다. 의붓오빠와 일하는 버스운전수에게 강간을 당한 제시카는 씻어도 씻어도 사라지지 않는 그 흔적을 지우고 싶어 제비꽃 향수를 훔치고 이후 잇달아 일어나는 작은 일들로 미리엄과의 관계마저 파국을 향해 내달린다.빈곤과 소외에서 벗어나고 싶은 제시카의 욕망이 빚어낸 영화 마지막 장면은 가슴을 서늘케 한다. 이란의 집나온 어린 소녀들의 쉼터를 다룬 <가출소녀들>이나, 독일사회에서 살아가는 터키 여성을 다룬 <아남> 등의 영화도 여성의 문제를 사회문제의 맥락 속에서 바라보는 작품들이다. 다큐멘타리 <욕망을 영화화하기: 여성감독이 말하는 섹슈얼리티>(감독 마리 맨디)는 `걸 파워'를 내건 딥 포커스 부문에 상영되는 영화들과 함께 보면 좋을 듯 하다. “섹스가 불결한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도 중요한 아이덴티티”임을 일찍이 선언했던 아네스 바르다, 샐리 포터 등 대표적인 여성감독들이 나와 `여성감독은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표현하는가'라는 문제에 답한다. 한 여성감독은 70년대 찍은 영화의 정사신에서 여성이 남성 위에 있다는 이유 만으로 장면을 들어낼 것을 요구받았다고 회고한다. 딥 포커스 부문 영화들이 그려내는 “방자하고 오만할 정도로 강한” 지금의 여성들의 모습과는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아직도 “전세계 2만명 감독 가운데 여성은 600명”인 상황 속에서, 영화제가 보여주는 `여성의 힘'을 만나는 경험은 각별하다. 개·폐막작 예매 25~27일, 본예매 25~4월4일. www.wffis.or.kr 김영희 기자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