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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라는 이름의 감옥 현실속에서 비상구는 없다
2002-05-03

조엘 에단 코엔 형제의 10번째 작품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2001)가 3일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에서 개봉한다. 코엔 형제는 <바톤 핑크>(1991)와 <파고>(96)에 이어 이 작품으로 칸 영화제에서 세 번째 감독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의 작품에 비해 유머를 좀 덜어낸 대신 줄거리의 짜임새를 더 강조했다. 이발사 에드(빌리 밥 손튼)의 일상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그는 처남 소유의 이발소에서 일한다. 과묵하고 침착한 에드로선 말 많은 처남과 손님들의 수다 듣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어느 날 두 가지 새로운 계기가 닥친다. 하나는 백화점 판매원인 아내 도리스(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외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드는 아내가 직장 상사 빅데이브(제임스 갠돌피니)를 집에 초대했을 때 육감으로 아내가 그와 외도중임을 알아챈다. 다른 하나는 어느 뜨내기 손님이 수다를 떠는 중에 흘린 `드라이 크리닝'이라는 새로운 사업에 관한 정보다. 그가 사업 아이디어와 기술은 있지만 1만 달러가 없어 착수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썩 미더워 보이지는 않지만 지긋지긋한 가위질소리와 날리는 머리카락에서 벗어나고 싶은 에드는 그를 믿어보기로 했다. 이 두 가지 새로운 상황은 묘하게 연결된다. 에드는 빅데이브에게 익명의 협박편지를 보내 1만 달러를 뜯어내어 드라이 크리닝 사업에 투자한다. 그러나 그 사업가는 어느 날 감쪽같이 증발하고, 에드는 빅데이브와 언쟁을 벌이다 그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다음날 들이닥친 경찰은 엉뚱하게도 아내를 범인으로 지목해 체포한다.

<그 남자…>는 공황과 전쟁의 그림자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1940년대 미국 북캐롤라이나가 배경이다. 영화가 그려낸 세계는 일상이라는 감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왜소한 소시민의 세계다. 정상적인 삶의 되풀이를 통해서는 이 일상의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에드 부부는 각각 외도와 협박이라는 상궤를 벗어난 행동을 해보지만, 모래수렁처럼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구렁텅이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뿐이다. 이 세계를 벗어나는 길은 오로지 팬터지뿐이다. 에드가 꿈속에서 감옥의 미로를 헤매다 출구를 찾았을 때, 밖에서 미확인비행물체가 한줄기 빛을 내리며 기다리고 있는 장면은 이를 상징한다. <그 남자…>는 지적이면서도 장난스럽고, 기발하면서도 천박하지 않은 코엔 형제의 상상력이 조금은 원숙한 틀거리 안에 짜여들어간 작품이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로만 이어지는 배경음악도 이 작품이 원만하게 대칭적으로 잘 빚은 명품 도자기 같다는 느낌을 더해준다. 따라서 <위대한 레보스키> 등 이전의 작품에 비하면 좀더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코엔 형제는 40년대의 분위기와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이 작품을 컬러필름으로 촬영한 뒤 흑백으로 인화했다. 처음부터 흑백필름으로 찍은 것에 비해 흑과 백 사이의 회색이 다양한 중간톤으로 살아있어 화면의 질감이 부드럽고 깊이가 느껴진다.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