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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전주국제영화제 5월2일 폐막
2002-05-08

영화와 죽어도 좋아

‘대안의 영화’라는 기치 아래 일주일 동안 열렸던 제3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지난 5월2일 막을 내렸다. 올해 행사는 영화제 직전에 관금붕, 사카모토 준지 등 중요 게스트가 불참을 통보해오고 영화제 기간 중 3일 동안 비가 내리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유료 관객 4만5738명이 영화를 관람해, 지난해 4만5570명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영화제의 열기는 지난해에 못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ID카드 소지자 등을 포함한 전체 관람객이 6만5천여명으로 지난해 8만2천여명보다 줄었고, 세미나 등 부대행사 참석인원도 13만명으로 지난해 15만6천명보다 저조했다.

주상영관이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되면서 고사동의 다른 상영관들과 멀리 떨어져 분위기가 한곳으로 결집되지 못한 것도 한 원인이 됐다. 그러나 좀더 큰 이유는 화제를 끌 만한 영화와 프로그램이 지난해보다 적었다는 점이다. 특별기획인 ‘전쟁과 영화’의 흡인력이 지난해 ‘68혁명과 영화’보다 부족했고, 구로사와 기요시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로 꾸려진 지난해의 특별·회고전이 올해 피에르 파울로 파졸리니 한명의 회고전으로 줄었다. 또 파졸리니 회고전이 영화제가 끝난 뒤 서울에서 다시 열리는 것도 서울의 관객을 전주까지 끌어내리는 유인력을 감소시키는 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가장 눈길을 끈 기획은 ‘미국 독립영화의 대모’로 불리는 크리스틴 바숑 특별전이었다. 토드 헤인즈의 <독약>은 두 차례 상영 모두 객석이 가득 찾으며 <고 피쉬> <해피니스> <키즈> <나는 앤디 워홀을 쐈다> 등 이 부문에 초청된 다른 영화에도 많은 관객이 몰렸다. 바숑이 참석한 기자회견과 세미나, 두 차례의 관객과의 대화 모두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돼 바숑은 올해 전주영화제의 최고 인기 게스트가 됐다. 상영작 중 최대 화제작은 노인들의 사랑과 섹스를 다룬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로, 영화제 기간 내내 관객의 입에 오르내렸고 영화제쪽에서 마련한 비디오시사실에서도 대여순위 1위를 기록했다. 두 남자의 사랑을 다룬 관금붕 감독의 <란위>도 상영관의 열기가 뜨거워,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프로듀서 장용닝은 쏟아지는 질문에 눈물을 글썽였고 무대 위에서 직접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다.

경쟁 부문인 ‘아시아 독립영화포럼’에서는 홍콩 얀 얀 막 감독의 <형>이 우석상(트로피와 상금 1만달러)을 차지했다. 중국 본토로 건너간 형을 찾아 나선 동생이 중국 대륙 미지의 땅을 여행하는 과정을 쫓은 <형>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진실에 대한 탐구와 비전으로 가득 찬 경이로운 세상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또 다른 경쟁 부문인 ‘디지털의 개입’에서는 체코 블라디미르 미할렉 감독의 <엔젤역 출구>가 ‘디지털 모험상’(트로피와 상금 5천만달러)을 받았다. “설득력 있는 미학적 컨셉을 가지고 영화에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결합시켰다. 또 시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주인공들의 변화하는 지각을 시각화했다”는 것이 심사평.

전주를 찾은 해외 게스트들은 당국의 검열이나 영화산업의 미비 등 자국의 열악한 영화환경과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영화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베이징영화아카데미 교수이자, 중국에서 최초로 커밍아웃한 지식인이라고 말해지는 쿠이지엔 감독은 게이들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찍은 <광대, 무대에 오르다>를 들고 전주를 찾아와 “동성애라는 소재가 중국에서 금기시되고 있지만, 디지털영화는 심의를 받지 않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찍을 수 있다”고 전했다. 피노체트 독재가 시작되자 독일로 망명했다가 90년대 후반에 다시 칠레로 돌아온 올란도 루버트 감독은 “파트리시오 구스만이나 라울 루이즈 등 앞세대 감독들은 칠레로 돌아오지 않은 채 거대 서사를 가지고 칠레를 말하지만, 지금의 칠레는 이전처럼 정치적 격변기가 아니다”면서 “우리는 칠레 안에서 구체적인 일상을 통해 역사를 말하려 한다”고 말했다.

극장 사정의 개선으로 인해 올해에는 영사사고가 크게 주는 등 전반적인 인프라는 좋아졌지만, 영화제쪽은 또 하나의 숙제를 안게 됐다. 영화제 기간 중 “영화제가 전주 시민과 괴리돼 있다”는 전주지역 언론의 비난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동진 프로그래머는 “지역사회와 만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글 임범 isman@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사진설명>

1. 올해 전주영화제 홍보대사로 위촉된 탤런트 소유진과 김완주(왼쪽) 전주시장, 최민 위원장.

2. 개막식에 참석한 임권택 감독과 인사를 나누는 김갑수.

3. 개막작 <케이티> 주인공 김갑수와 안은용 그리고 제작자 이봉우씨가 인사를 하고 있다.

4. 영화제 첫날 많은 국내외 게스트와 기자들이 몰린 프레스센터.

5. 소리의 전당에 마련된 임시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하고 있는 관객.

6. 전주 씨네21극장 앞에서 만난 외국인 관람객.

7. 전주영화제공식 일간지인 씨네21 데일리는 관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8. 많은 인원이 참석한 유럽 아트애니매이션 강좌.

9. 영화제 이벤트 중 하나인 씨네락 콘서트.

10. 페이스 프린팅을 전달받은 칠레의 올란도 루버트 감독.

11. 개막식장에 입장하면서 코믹한 포즈를 취해 관객을 즐겁게 해준 명계남.

12. 영화 <형>으로 우석상을 수상한 홍콩의 얀 얀 막 감독.

13. 페이스 프린팅을 전달받은 유현목 감독.

14. 개막식장에 입장하고 있는 신상옥. 최은희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