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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촬영현장에 가다
2002-05-21

이창동 감독의 세번째 영화 <오아시스>는 멜로물이다. 하지만 또 한편의 '선남선녀의 사랑'은 아니다. 뺑소니사고로 투옥됐던 종두(설경구)는 가족들로부터도 차갑게 외면당하는 사회부적응자다. 사고로 죽은 피해자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낡고 좁은 아파트에 홀로 남겨져 제대로 몸도 못 움직이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아 공주(문소리)를 만난다. 종두와 공주는 사랑하게 되지만 남들은 `사랑'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편집자 지난 19일 새벽 서울 청계고가도로. 이창동 감독이 최근 출범한 서울영상위의 노력으로,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서울시와 서울경찰청의 허가를 얻어 <오아시스>를 촬영하는 현장이다. “거기 마이크 잡혀, 다 앉아!.” 촬영현장에서 소리 한번 지르지 않기로 이름난 이 감독이지만, 이날 만큼은 메가폰까지 동원하고 몇차례씩 소리를 높였다. 허가받은 시간은 새벽 3시~아침 9시. 캄캄하거나 해가 어슴프레 뜰 무렵의 장면만 쓸 작정인 이 감독으로선 불과 2시간 만에 6컷씩 2번, 12컷을 찍어야 했다. 조바심 내는 건 당연했다. “원래 난 1컷 찍는데 6시간 걸리거든요.” 이날 촬영엔 자원봉사 차량 1백여대와 스텝 80여명이 동원되고, 자진해 나온 도우미 `박하사탕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과 취재진까지 120여명이 몰려 청계5∼6가 고가도로 2차선 500m 구간을 메웠다. 차들이 길을 꽉 메운 청계고가도로에서, 종두가 갑자기 공주를 안고 차에서 나와 춤을 춘다. “아이, 씨바 좋다!” 들어간 식당에서 냉대를 받은 뒤 결국 종두가 일하는 카센터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으며 `최고의' 데이트를 마친 두 사람이, 공주의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다. “남들이 보면 `또라이 짓'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 소외받는 이들의, 자기들만의 `판타지'를 몸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게 이 감독의 설명이다. <공공의 적> 때보다 18㎏ 가까이 뺐다는 설경구씨는 퀭한 모습이었다. <박하사탕>에서 순수한 첫사랑이었던 문소리씨는 온 몸의 근육이 뒤틀리는 장애인 연기에 집중하다보니 근육이 굳는 건 물론, “평소에도 가끔 입이 좀 돌아갈 정도”다. 이 감독은 <오아시스>를 통해 “사랑의 가장 본질적인 것을 드러내고 싶다”고 말했다. “종두와 공주는 관객들이 쉽게 동일화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주관적인 사랑을 남들은 객관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런 걸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고 사랑이라는 본질도 조금 다른 각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이나, 이들을 소외시키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 쉽게 연상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감독은 “오히려 때론 혐오감까지 느껴질 것”이라며 인물들을 `도식적인 구도'에 넣지는 않을 것이라 강조했다. 그래도 전작들과 달리 `해피엔드'인 이 영화는 자신의 작품 가운데 “가장 밝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희망까지는 아니고,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고나 할까요.” 감독은 남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랑을 통해, 사랑의 원형질을 찾고 있었다. 촬영은 예정보다 훨씬 이른 아침 6시 정도에 끝났다. “만족할 수가 없죠. 원래 설정으론 상가 차창에 비치는 노을과 차량의 불빛, 가로등이 춤추는 두 사람을 '환상적'으로 감싸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었으니까”라면서도 허가를 얻은 촬영이었다는 데 의미를 두겠다고 말했다. <오아시스>는 21일 타이에서 공주의 판타지에 등장하는 아기 코끼리를 찍으며 촬영을 마무리한 뒤 오는 8월9일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김영희 기자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