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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으로 맞닿은 평화 갈망
2002-05-24

칸국제영화제가 올해 경쟁부문에서 공을 많이 들인 대목의 하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화를 함께 가져온 일이었다. 16일 상영한 이스라엘의 중견 감독 아모스 기타이(52)의 <케드마>(동쪽으로)와 20일 선뵌 팔레스타인의 신예 엘리아 술레이만(42)의 <야돈 일라헤이야>(신의 개입)가 그것이다. 두 작품은 입지가 다른 두 감독이 다른 시각에서 평화에 대한 갈망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사랑과 고통의 연대기’란 부제가 붙은 <야돈…>은 팔레스타인에 관한 뭔가 무거운 영상을 기대한 관객의 허를 찌른 코미디다. 영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나자렛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을 단막 코미디처럼 보여준다. 중년 남자 한사람이 매일 이웃집 담장 너머로 쓰레기 봉지를 버린다. 며칠 뒤 이웃집 사람은 그 쓰레기를 고스란히 중년 남자의 집 앞으로 내던진다. 두 사람은 서로 “이웃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항의한다. 이 에피소드는 ‘이웃 사람’이란 말이 영화의 열쇠말임을 보여준다. 감독은 고정된 카메라로 길게 찍은 프레임 안에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기심과 욕망, 갈등과 짜증을 해학적으로 담아냈다. 단편들은 점점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① 몽둥이를 든 청년들이 저주를 내뱉으며 무언가를 구타한다. 그중 한 사람이 그 대상을 권총으로 쏜다. 나중에 그 물체는 뱀으로 판명된다. ② 자동차 한 대가 어떤 저택 앞을 지나다 화염병을 던진다. 집 주인은 신문 가지러 나올 때와 마찬가지의 얼굴로 걸어나와 소화기로 불을 끄고 들어간다. ③ 어떤 여인이 경찰에게 길을 묻자 경찰은 호송차에 눈을 가린 채 실려 있던 청년을 끌어내려 길을 가르쳐주라고 한다. 이런 단편들이 던져주는 웃음에는 카메라의 앵글 바깥에 존재하는 증오, 테러, 폭력, 체포, 고문, 학살 따위가 섬뜩하게 묻어 있다. 두 번째 부분은 나자렛에 사는 남자(엘리아 술레이만)와 예루살렘에 사는 여자(마날 카데르) 사이의 만남이다. 두 사람은 늘 나자렛과 예루살렘 중간의 이스라엘군 검문소가 내려다보이는 공터에서 만나 아무 말 없이 검문소를 바라본다. 검문소의 이스라엘 군은 온갖 방식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수모를 안겨준다. 이를 바라보는 남자의 큰 눈엔 분노나 적개심 대신 연민과 우울이 배어 있다. 그건 이 영화가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바라보는 눈길과 동일하다. 세 번째 부분은 팬터지다. “쏠 준비가 됐으면 입소하라!”는 선동문구가 쓰인 이스라엘의 군사훈련장에서 다섯 남자가 교관의 지시에 따라 사격훈련을 받는다. 과녁엔 실제 크기의 팔레스타인 여성이 그려져 있다. 사격이 끝난 뒤 표적 뒤에선 뜻밖에 실제 팔레스타인 여자가 걸어나온다. 남자들은 격렬하게 집중사격을 퍼붓지만, 여자는 <매트릭스>를 연상시키는 유려한 몸짓으로 총알을 되돌려준다. <야돈…>은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가벼운 농담처럼 그려낸 뒤 그 뒤에 숨어있는 어두운 현실에 관해 성찰하도록 만드는 독특한 양식의 실험영화다. 아모스 기타이의 <케드마>는 1948년 5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세워진 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의 이야기다. 나치의 대학살을 피한 유럽의 유대인들은 벤 구리온의 시온주의에 따라 새로 건국된 이스라엘을 찾아 ‘케드마’란 화물선을 타고 팔레스타인으로 밀항한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린 건 영국군의 총알이다. 유대인들은 영국군에 쫓기고, 무장한 유대인들은 다시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는 혼란이 전개된다. 영화는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유대인의 두 얼굴을 비교적 공정하게 그려내고 있다.두 영화를 경쟁부문에 초청한 칸의 ‘정치적 고려’는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야돈…>은 스크린을 통해 만나기 어려웠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담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케드마>는 자신들이 저지른 ‘가해의 역사’는 외면한 채 ‘피해의 기억’만 부각시켜왔던 이스라엘에서 만들어진 자기성찰적 영화라는 점에서, 영상언어의 영토를 확장한 공로를 인정받았던 것은 아닐까. 칸/글 이상수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