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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결단` 앞둔 싸이더스와 튜브, 충무로의 지반이 들썩인다(1)
2002-06-01

一步後退(일보후퇴)하여 捲土重來(권토중래) 하리라

충무로는 늘 움직인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최근에도 충무로의 대치구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만한 거대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이 새로운 합종연횡의 중앙에는 싸이더스와 튜브엔터테인먼트가 있다. 한국영화계의 양대 군단이라 할 수 있는 시네마서비스, CJ엔터테인먼트와 모종의 협력관계를 도모하던 두 회사는 각기 새로운 행선지를 향해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싸이더스는 시네마서비스를 이탈해 ‘유령’호를 타고 반대편에 있는 CJ쪽으로 항해를 시작했고, 튜브는 독자적인 판을 짜기 위해 ‘로스트 메모리즈’를 찾아 다시금 배급 전선을 향해 길을 떠났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이들의 움직임에는 어떤 배경이 있나, 그리고 향후 충무로의 판도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편집자

올해 초만 해도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는 “음반, 매니지먼트, 게임 등까지 챙기다보니 정신이 없다”고 말해왔다. 그러던 차 대표의 말수가 최근 들어 급격히 줄었다. 그 시점은 지난 4월 윤곽이 드러난 로커스홀딩스와 시네마서비스의 합병법인 플레너스 엔터테인먼트의 출범 전후와 대략 일치한다. 그의 침묵은 마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반면 튜브엔터테인먼트 김승범 대표의 표정은 밝아졌다. 연초만 해도 긴장감과 수심 비슷한 것에 젖어 있던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집으로…>의 흥행 성공과 CJ엔터테인먼트와의 인수협상 중단 결정을 내린 시점과 얼추 맞아떨어진다. 두 기업을 대표하는 두 사람의 변모는 뭔가 중대한 변화를 의미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싸이더스와 튜브, 움직임이 심상찮다 오는 6월 공식적으로 출범하는 플레너스 엔터테인먼트의 사업구상에선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주요 계열회사인 싸이더스가 두개의 기업으로 분할된 것이다. 하나가 기존의 싸이더스, 다른 하나는 싸이더스 HQ다. 즉 영화제작, 음반사업, 연예인 및 스포츠 선수 매니지먼트 등 엔터테인먼트 관련 사업을 종합적으로 펼쳐나가던 싸이더스가 둘로 쪼개져, 싸이더스에서는 영화제작 및 스포츠 선수 매니지먼트를 맡고, 싸이더스 HQ는 음반과 연예인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이와 동시에 53%에 이르던 플레너스(구로커스홀딩스)의 싸이더스에 대한 지분율도 38%로 낮아졌고 차승재 대표의 지분은 49%로 상승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플레너스의 박병무 대표는 이같은 기업 분할이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차승재 대표가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충무로의 입방아꾼들은 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결국 플레너스 출범이나 싸이더스 분할과 관련한 의사결정에서 배제된 싸이더스가 옛 로커스홀딩스-시네마서비스와의 협력체제로부터 떨어져나와 독립적인 노선을 추구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이에 따라 지분변동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최근 싸이더스가 <발해> <지구를 지켜라> <연인> 등 신작에 대한 투자를 시네마서비스의 라이벌 업체 CJ엔터테인먼트로부터 받고 배급권을 넘겨주기로 한 것은 이같은 추측에 신빙성이라는 날개를 달아주는 사건이다.

나뉘는 싸이더스, 홀로 서는 튜브

튜브엔터테인먼트에서도 이상기류가 엿보이고 있다. 지난 한해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며 기업 인수 협상을 거듭했던 튜브가 최근까지도 계속됐던 CJ와의 논의를 중단하고,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 또 튜브는 자회사인 튜브픽처스를 확대, 강화하는 대신 홍보업을 하는 자회사 튜브커뮤니케이션스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김승범 대표는 현재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길 꺼리고 있으나, 관계자들은 튜브의 이러한 움직임 뒤에는 <집으로…>의 대성공이 놓여 있다고 바라본다. 즉, <집으로…>가 400만명 가까운 흥행을 기록해 70억원가량을 확보하게 된 튜브가 그동안 겪어왔던 현금 유동성 문제에서 벗어나면서 다른 기업에 인수될 이유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특히 CJ의 투자를 받게 될 경우 배급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여력이 생긴 마당에 굳이 기업의 독자성을 잃을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같은 전망은 결국 튜브가 배급업으로 다시 진출할 것이라는 예측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동안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내츄럴시티> <튜브> 등 총제작비가 50억원에서 100억원 가까이 소요되는 초대형 프로젝트에 투자하느라 허덕였던 튜브가 이제는 CJ로부터 수혈받은 자금으로 부담을 덜었다는 점과 평소 “배급업만이 내가 펼칠 비즈니스라고 생각한다”는 생각을 피력했던 김승범 대표의 지론으로 미뤄볼 때, 튜브의 다음 행보가 배급일 것이라는 견해는 설득력을 얻는다.

싸이더스와 튜브의 의미심장한 움직임은 두 회사의 활동을 고려할 때 결코 무시할 만한 성격의 것이 아니다. 싸이더스는 우노필름 시절부터 뛰어난 기획력과 일정 수준의 완성도를 일궈내왔다. 현실적으로 1년에 5∼6편 정도의 영화를 꾸준히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제작사라 할 수 있는 싸이더스가 어떤 곳이든 배급 라인에 가담하게 된다면, 해당 배급사의 파워는 배가될 것이다. 튜브 역시 일신창투 시절부터 뛰어난 투자, 배급 수완을 발휘해온 김승범 대표의 경력이나 50억원이 넘는 초대형 프로젝트 여러 개를 개발, 관리해온 노하우를 고려할 때 결코 만만치 않다. 배급의 힘이 결국 라인업에서 나온다고 했을 때, 한국영화 블록버스터의 존재는 극장으로서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싸이더스와 튜브의 움직임에 충무로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위기에 몰려 기회를 노리다.

최근 보이는 두 회사의 움직임은 주목할 만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충무로를 주도하기 위한 그것이라기보다는 수렁과 같은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한 수세적인 대응책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지난해 초반까지의 상황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셈이다. 싸이더스는 2000년 당시 우노필름 차승재 대표가 로커스와 손잡고 만든 종합엔터테인먼트 업체. 차 대표의 주도로 정훈탁 현 싸이더스 HQ 대표가 이끌던 매니지먼트 업체 EBM, 전 SM기획 대표 정해익씨 등이 참여해 성사됐다. 당시 한반도를 휘감았던 벤처 열풍과 함께 싸이더스는 공세적으로 활동을 펼쳐나갔다. 2000년의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으나 싸이더스에 2001년은 그동안의 기반 다지기 작업을 통한 성과가 나타나고,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는 해였다. 그만큼 주위의 기대도 많았다. <무사> <화산고> <봄날은 간다> 같은 프로젝트가 있었고,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해외와의 작업도 활발했다. 하지만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 특히 야심작으로 꼽혔던 <무사>가 작품성과 흥행에서 미진한 평가를 얻은 것이 타격이었다. 충무로에서는 싸이더스가 그동안 확장만을 신경쓰며 내실에는 힘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또 하나, 지난해 싸이더스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만한 사건이 있었다. 싸이더스의 지주회사였던 로커스홀딩스가 시네마서비스를 계열회사로 포섭한 것이었다. 결국 로커스홀딩스를 매개로 싸이더스와 시네마서비스는 형제관계를 맺게 됐다. 시장은 시네마서비스-싸이더스 연합군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상황은 썩 잘 풀리지 않았다. 시네마서비스가 투자, 배급면에서 폭넓은 활약을 펼친 데 비해 싸이더스의 활약상은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았다. 로커스홀딩스를 중심으로 묶인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군 안에서의 무게중심은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매출 및 수익구조를 갖고 있으며,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커다란 힘을 발휘하는 시네마서비스쪽으로 힘이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엔터테인먼트를 본격적인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로커스홀딩스의 전략과 맞아떨어지는 것이기도 했다. 반면 이 기업군에서 싸이더스의 비중은 갈수록 줄어드는 듯 보였다. 특히 1년에 1∼3편의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단단한 제작사들을 제휴사로 두고 있는 시네마서비스 입장에서 싸이더스의 영화를 모두 배급하는 것은 바람직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튜브에도 2001년은 기대로 시작했지만 악몽으로 마무리지은 한해였다. 일신창투에서 독립한 김승범 대표가 2000년 튜브인베스트먼트와 함께 설립한 튜브엔터테인먼트는 창립 첫해 외화들을 배급하며 그런 대로 좋은 가능성을 보였다. 한국영화를 본격적으로 배급하게 된 2001년만 해도 튜브는 기존 시네마서비스-CJ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배급 3강’을 형성하게 될 것으로 전망됐다. 김 대표의 경력도 경력이지만, 무엇보다 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와이 순지의 <스왈로우테일/버터플라이> 같은 일본영화와 <툼 레이더>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까지 품고 있던 튜브였기에 자신감 있게 “업계 1위”까지 호언장담할 수 있었다.

잘 나가던 두 회사, 수세로 역전된 2001년

하지만 튜브가 후발업자로서 배급업계에서 빨리 자리를 잡기 위해 채택한 회심의 전략인 블록버스터 확보 노선은 부메랑처럼 날아와 도리어 회사의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 제작사나 튜브쪽이나 블록버스터에 대한 경험이 일천한 탓에 수많은 시행착오가 벌어졌다. 우선 제작비가 애초 예상치를 넘어 상승 일로를 탔다. 그나마 영화가 빨리 완성돼 개봉을 제때 했더라면, 입장료가 회수돼 자금난을 덜 수 있었겠지만, 제작 기간마저 길어져 2001년 안에 두 작품 모두 개봉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때 좋은 반응을 얻었던 일본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급작스럽게 싸늘해졌다.

튜브는 애초 투자조합의 200억원과 얼마간의 추가자금만 확보하면, 한해 배급을 이끌 수 있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결국 2001년 초부터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지루한 나날들이 지속됐다. 오리온 그룹쪽과 인수협상을 했던 것이나, 유니코리아와 투자협상을 펼쳤던 것도 모두 블록버스터영화에 대한 제작비를 조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내츄럴시티>와 <튜브>가 제작에 돌입하자 자금난은 더욱 심해졌다. 영화제작에 들어간 150억∼300억원의 자금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물려 있으면서 신규, 또는 추가투자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결국 김승범 대표는 “배급을 포기하더라도, 풍부한 자금을 투자받아 영화를 살리자”는 ‘고뇌에 찬 결단’을 내렸고, 지난 연말부터 튜브를 CJ에 인수시키기 위한 협상을 벌이게 됐던 것.

올해 접어들면서도 두 업체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더 나빠지는 것 같았다. 싸이더스는 <정글쥬스> <결혼은, 미친 짓이다> 같은 작품들의 배급이 시네마서비스가 아니라, 시네마서비스의 자회사인 청어람을 통해 이뤄지는 결정을 맞이하게 됐고, 로커스홀딩스가 시네마서비스를 합병해 플레너스 엔터테인먼트를 꾸리는 과정을 그저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튜브 또한 CJ와의 인수 협상에 난항을 겪었다. 게다가 큰 기대를 품고 개봉했던 의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쳐 CJ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튜브의 몫은 더욱 좁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링의 코너에 몰려 잔뜩 웅크리고 있던 두 회사는 카운터 블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위기의 막바지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 `중대결단` 앞둔 싸이더스와 튜브, 충무로의 지반이 들썩인다(1)

▶ `중대결단` 앞둔 싸이더스와 튜브, 충무로의 지반이 들썩인다(2)

▶ 싸이더스, 튜브 출범이후 제작된 영화와 차기 영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