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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박물관
2002-06-14

다 함께 길을 잃자!

“우리 다 함께 길을 잃자”(Let’s Lose Our Way Together). 미야자키 하야오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제작하면서 함께 진행한 지브리 박물관은 <센과 치히로…>과 유사한 컨셉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자신이 선 곳이 1층인지, 2층인지 헷갈릴 때도 많다. 아이들은 미로 같은 복도를 헤매며, 엉뚱한 곳에 나 있는 문을 열어보며 즐거워한다. 박물관이란 딱딱한 명칭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곳, 이곳은 미야자키의 꿈이 총집결된 ‘아이들의 낙원’이다. 아이들이 만지지 못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미야자키가 그린 원화라도 상관없다. 이같은 ‘방임’으로 인한 부작용은 박물관쪽이 기꺼이 감수한다.

도쿄 도미타카시 이노바시라 공원 안에 자리잡은 지브리 박물관은 건물 전체에 미야자키의 손길이 묻어 있다. 건물 설계는 물론 내부 소품 하나하나 직접 미야자키가 그리고 만졌다. 지브리 박물관 문양이 찍힌 벽돌에서, 고양이 수도꼭지, 작은 원형창문을 가득 채운 숯검댕이 인형들, 토토로, 원령공주를 비롯, 미야자키의 캐릭터들이 그려진 스탠드글라스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만들어진 게 없다. 이곳에 있으면 정말, 행·복·해·진·다. 아이들이 이곳을 얼마나 좋아할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래서 예약제로 하루 2600명만 받는 이 박물관에 가려면 적어도 몇달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전문’ 박물관답게 이곳에는 애니메이션 제작과정을 크게 준비실, 콘디작업실, 작화실로 나눠 보여주는 전시실이 있다. 이곳조차 친근하긴 마찬가지. 각각의 방을 애니메이터가 작업을 하다 막 자리를 뜬 듯이 연출해, 아이들은 그 의자에 앉아보기도 하고, 색연필은 집어보기도 하고, 책상에 닥지닥지 붙은 그림과 낙서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미야자키는 여기에 붙은 이 그림들 전부를 직접 그렸다. 책상에 앉거나 마룻바닥에 누워서 한달 반 동안. 또한 전시실에는 <센과 치히로…>의 원화들이 걸려 있는데, 이 전시실 한가운데에 <센과 치히로…>에 쓰인 원화 10만여장이 유리 상자 안에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종이들 위에는 황금사자상이 놓여 있다. 마치 아이들에게서 온 것을 아이들에게 돌려준다는 듯이. 또한 이곳 아담하고 작은 시사실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신작’인 단편 <고래잡이>와 <코로의 산책>이 상영중이다. 그러나 박물관 안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2층에 있는 고양이 버스다. <이웃집 토토로>에서 튀어나온 듯한 이 고양이 버스에는 12살 미만의 아이들만 입장이 가능하다.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나갔다, 고양이 발에 앉았다, 지붕 위에 올라갔다, 숯검댕이 인형을 오자미처럼 집어던졌다, 아이들은 정신이 없다. 보고 있으면 아이들이 마냥 부럽다.

그리고 그 버스 위에 미야자키가 가장 좋아하는 박물관의 옥상 정원이 있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오는 거신병이 우뚝 서 있는 이곳은 높고 낮은 나무와 수풀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미야자키가 어렸을 때 놀던 공터의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온 잔디밭이 있다. 이곳에 앉아 있으면, 나무만 보일 뿐 주변의 시멘트 건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미야자키가 정원을 이렇게 꾸민 것도 그런 이유. 이곳에 앉아 고양이 버스를 오르락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미야자키는 무슨 생각을 할까? 문득 그게 궁금해졌다.

사진설명

1. 박물관 옥상에 선, <천공의 성 라퓨타>에 등장하는 거신병을 모델로 한 청동상. 박물관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다.

2. 조금전까지 누군가 앉아 있었던 것처럼 연출해, 아이들에게 애니메이션 작업 과정을 실감하도록 했다. 여기 붙어 있는 각각의 그림은 모두 미야자키가 그렸다.

3. 지브리 박물관 내부는 마치 미로처럼 복잡하게 만들어졌다. "이곳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길 바란다"는 것이 미야자키의 의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 탐방기

▶ 미야자키 하야오 & 스즈키 도시오 인터뷰

▶ 지브리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