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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1)
2002-06-15

<결혼은.....>? 아니다, 지극히 이성적인 경제활동이다

아니다, 지극히 이성적인 경제활동이다

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1적

분석

경고: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이 글을 읽지 마시오!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 결혼은 미친 짓일까? 당신은 당신의 배우자와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죽어도 좋은` 변함없는

애정을 견지할 수 있는가. 일부일처제라는 해묵은 판타지에 과연 돌파구는 있다고 믿는가. 여기, 그 모든 의문에 관한 한편의 도발적인

보고서가 있다. 욕망의 거래소인 결혼시장의 본질은 무엇이며, 결혼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만족의 극한점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합리적으로 욕망을 추구할 수 있는가? 공식적 의미의 결혼 뿐이 아닌 비공식적인 결혼인 동거나 사실혼까지를 포함하는 새로운 `결혼`의

개념을 소개한다.

대관절 결혼이 무엇이며, 무엇하자는 것일까. 애들은 가라! 결혼시장에 분할혼을 허하라. 연대박사과정에 있는 황진미씨의 원고는

한편의 흥미로운 딴죽걸기이다.

편집자

어떤 이는 이 영화를 보고, 결혼은 정말 미친 짓이라는 메시지를 충실히 전달★2받았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이 영화를 보고 그녀의 발칙함에 치를 떨며, 이 시대의 ‘몸 따로, 마음 따로’인 성도덕을 개탄★3하기도

한다. 또, 한 분석적인 평론가는 이 영화를 “현대 한국사회의 결혼제도에 대한 성찰과 함께, 제도의 이면에 존재하는 풍속도와 심성을 읽을

수 있는 텍스트★4로 평하기도 하였다. 한편 세상에는 “당신이

미리부터 선을 긋지만 않았더라도 그렇게 빨리 당신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심지어 그녀를, 그들을 동정하기까지

하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관객★5도 (믿어지지 않겠지만

정말)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말하고자, 혹은 까발기고자 한 것은 “간통, 혹은 중혼을 통한 결혼의 ‘규범성’(모럴리티)과 ‘정형성’(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이의제기” 정도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의 의도는 “분할혼을 통한 결혼의 본질 규명”으로 보여진다. 즉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결혼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따라서 무엇으로 분할 가능한지, 결혼은 무엇에 의해 움직여지며, 궁극적으로 무엇에 복무하는지에 대한 것… 한마디로

결혼이 무엇이며, 무엇 하자는 짓인지에 대한 보고서로 읽혀지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대체 결혼이 무엇하자는 짓이라는 겐가? 이 영화의 대답은 역설적이게도, 제목에서처럼 ‘미친 짓’이 아니라, ‘지극히 이성적인

경제활동’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욕망의 거래소인 결혼시장★6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해, 경제학이라는 칼을 들고 영화 속으로 들어가보자.

이 영화에는 세 인물이 나온다. 감우성★7, 엄정화, 엄정화의

남편. 경제학적 분석을 위해 우선 그들의 욕망과 자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경제학의 정의가 바로 “인간의 무한한 물질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학문★8이기

때문이다.

먼저 감우성의 욕망은 무엇인가? 그는 처음부터 “섹시한 여자친구”를 원했다. 그리고 위장결혼 운운하며, 결혼의 허위 의식적인 일체의 것은

배제한 채, 섹스만은 실제로 하고 싶어한다★9. 그리고

그녀의 출가 권유에 쾌히 응하였듯, 그는 꽤 오랫동안 집에서 혼자 나와 살기를 원했다.

엄정화의 욕망은 무엇인가? 그녀는 “가난하지 않은 남자의 아내”가 되고 싶은 욕망과 “못생기지 않은 남자와 사랑 혹은 섹스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경제적 욕망은 감우성의 입을 통해 “나라고 해도 절대로 포기 못할” 확고한 욕망으로, 그녀의 성적 욕망은 역시 감우성의

입을 통해 “일생 동안 누군가를 끊임없이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항구적이고 영속적인 욕망으로 거듭 해설되어진다.

그러면 엄정화 남편의 욕망은 무엇인가? 남편과의 성생활을 비롯한 부부생활이 자세히 언급되지 않아서 분석에 한계를 지니나, 아마도 가사에

능한 아내로부터(시부모 공경까지 포함된★10) 서비스를

충분히 받고 싶었으며, (특히 남들이 보기에) 성적 매력이 있는 여자와 살고 싶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감우성의 자원, 쿨한 냉소주의

자, 그럼 이제 그들이 지닌 자원은 무엇인가 살펴보자. 감우성은 “아직은 보따리장수”라 경제적으로는 방 하나 얻을 돈도 없을 만큼 무력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자원은 “테크닉이 뛰어난” 점, 그리고 (제자에게까지) 귀여워 보이는 용모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가 충분히 자기냉소적★1

이고, 상당히 세련된 교양을 갖춘 지식인이라는 점이다. 좀더 풀어서 말하자면 감우성은 타인의 욕망을 정확히 간파하고, 자신의 지불한계를

명백히 숙지하고 있다. 비록 분할혼의 형태를 먼저 제안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한계에 걸맞은 형식의 이 결혼을 정확히 이해하였고,

기꺼이 동참하여★12 자기 몫을 챙겼다. 그는 합리적이며,

무리한 허풍이나 과도한 독점욕, 객쩍은 폭력성 등이 거세(!)되어 있다★13.

그는 때로 이죽거릴망정 고전영화의 명장면에 등장하는 결혼식장 난입이나 불과 수년 전 영화인 <해피엔드>의 주진모식 ‘그녀 집주변을

불안하게 서성거리기’나 ‘기존의 가족관념에 망상적으로 집착하며(“난 너한테 대체 뭐니? 내가 네 첩이니?”), 자괴감에 몸을 떨기’ 따위의

불온한 행태를 보이지 않는, 매우 안정되고 깔끔하며, 쿨(Cool)한 남자라는 것, 그것이 감우성이 지닌 최대의 자원이다. 영리한(따라서

자기 보존욕구도 상당한) 엄정화에게는 이 점이 가장 구매욕을 자극하는 대목이었을 것이다.

엄정화의 자원은 무엇인가? 1500만원가량★14 의 유휴자금이

있을 만큼 경제력은 감우성보다 높다. 상당한 정도의 성적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요리기법을 비롯한 가사에 능통하여 결혼시장의 소비자인 배우자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자질을 지니고 있다. 또한 그녀는 합리적인 소비자로서 냉철하고 용의주도한 경제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며(그녀는 일반시장에서건

결혼시장에서건 충동구매 따위는 하지 않는다), 더구나 자신이 지닌 재화와 서비스를 제때에 제값을 받고 팔 수 있는 훌륭한 마케팅 능력★15

을 지니고 있다.

엄정화 남편의 자원은 뭐니뭐니해도 재력이다★16 . 성적

매력은 별로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이들 3자로부터 거래가 이루어진다. 경제학에서의 정의가 그러하듯 이들 중 누구의 욕망이 특별히 이기적이거나

부도덕하지 않으며, 어느 누가(흔히 비난받듯 엄정화가) 이기적이라면, 다른 누구도 마찬가지로 이기적이다★17

. 그들은 다만 각자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고, 모두 자신의 욕망과 자원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합리적인 “경제인”(Homo

economicus)일 뿐이다.

욕망의 공정한 거래를 이루다

이들간에 서로 다른 욕망이 공정하게 거래됨으로써, 서로의 욕망이 충족되고 있다. 감우성이 꿈꾼 “결혼의 허위의식이 배제된 채 섹스만이

실존하는” 내실있는 결혼생활이 ‘그들만의 결혼’을 통해 구현되었다. 한편 엄정화의 양립 불가능해 보였던 두 가지 욕망은 그녀가 두개의 남편과

두개의 결혼을 구매, 소비함으로써 충족되었으며, 두개의 결혼이 적절히 분배되고 조화됨으로써 편익이 최대화되고 있다(한계 대체율 체감의 법칙).

엄정화 남편의 욕망도 마찬가지로 구현된다. 그 역시 결혼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성실하게

복무함으로써 고객 만족을 이루어내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녀는 “들키지 않을” 수 있고, 그녀의 중혼은 법적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18

. 결과적으로 이들 3자는 자신들의 욕망과 자원을 교환함으로써, 이 정직한 거래를 통해 각자의 후생이 증진되는 매우 바람직한 결과를

얻는데, 이 지점이 바로 “파래토적 최적”이며, 이 균형점에서 그들의 활동은 (미친 짓이 아니라!) 합목적적인 경제행위인 것이다.

★1 왜 하필 경제학인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규명하고자 하는 이른바 사회과학들

중에서 가장 논리적이며 정교한 체계를 갖춘 학문이며, 연역적 방법론을 취하는 거의 유일한 사회과학이라는 경제학자들의 견해에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2 고종석. <씨네21> 351호 106쪽 ‘맞아, 괜히 결혼했어’.

★3 주로는 남성 관객이다.

★4 김소희. <씨네21> 351호 104쪽 ‘감동적인 그녀의 뻔뻔함’.

★5 스무살을 갓 넘긴 여자 관객이나, 그에 준하는 정서를 가진 여린 이들이다.

이들에겐 이 글의 일독을 별로 권해주고 싶지 않다. 마찬가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나름대로 이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 거룩한 단순함이여!…

애들은 가라!”

★6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결혼이라는 시장, 혹은 결혼시장이라는 것은 단순히

배우자를 선택하는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 이후의 배우자들간에 이루어지는 모든 가치의 교환을 포괄하는 개념이며,

또한 비공식적인 결혼인 동거나 사실혼까지 포함함을 분명히 밝혀둔다.

★7 극중 인물의 이름은 잊어버리고, 소통의 편의상 배우의 이름으로 대신해보자.

★8 유시민. <경제학 카페> 돌베게 2002. 19쪽.

★9 “그럼 섹스는?” “그건 진짜로 해야지!”

★10 “까다로운 시댁식구들 비위도 맞춰야 되겠고….”

★11 그의 강의 도중에 암시되기도 한다.

★12 이들 관계에서 처음 “왕복 택시비면 여관비와 비슷하겠다”는 암시적 언급을

먼저 한 것이 그였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들 사이에서 무엇인가를 제안하고, 기획하고, 주도하는 것은 언제나 그녀이다. 그는 늘 추인하고 이행한다.

★13 그녀의 몸에서 나는 다른 남자의 향수 냄새에 단 한번의 볼멘소리가 고작이었으며,

젓가락을 집어던지는 행패가 단 한번 있었을 뿐이다.

★14 옥수동? 15평 신축 옥탑방의 전세금으로 추정.

★15 물론 여기에는 처음 만난 남자와 동침할 수 있는 과단성과 수시로 보여지는

연극기도 포함되어 있다.

★16 양재동? 45평 빌라? 시가 5억원 이상?

★17 감우성이 감히 그녀를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그는

하루빨리 그녀에게 전세금을 변제하고, 이사를 가는 것이 스스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길일 것이다.

★18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물론 엄정화의 정직한 노동이다▶ 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1)

▶ 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2)

▶ 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