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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3)
2002-06-15

<결혼은.....>? 아니다, 지극히 이성적인 경제활동이다

이제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명확해졌다. 이 영화는 분할혼을 통해 결혼시장의

요소와 운동법칙을 지극히 자본주의적으로 해부하여 동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제목 가운데에(어법에

맞지 않게) 위치하고 있는 쉼표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결혼은 (법적, 규범적 제도라고 이해하고, 아직도 그 결혼의 개념적 신성함을 극구 주장하며, 여전히 단 하나의 결혼의 형태와 절대적 일부일부체를

맹신, 숭앙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는 뜻으로 풀이된다★31

.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라, 욕망의 정직하고 현명한 거래를 통해 참여자의 후생을 증진시키는 매우 유익한 경제활동이다. 단, 이를 위해 유연한

시장의 기능이 작동되어야 하며, 상호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32

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완전 자유시장에서 서로의 욕망이 배치되면 거래는 더이상 성립하지 않으며, 새로운 거래 접점을 향해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다.

새로운 거래 접점이라… 자, 이들 3자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까? 이들 거래의 종식에 관한 시나리오를 한번 구상해보자.

감우성쪽에서 전세금을 변제하고, 이사하는 것이 가장 빠른 종식 방법일 테지만 그가 그런 결단을 내릴 리 만무하다. 돈을 모으기도 쉽지 않거니와

그로서는 돈도 주고, 몸도 주고, 밥도 주는 그녀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물론 장기적으로야 그도 갈수록 형편이 나아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에게도 화폐가 생기고, 새로운 (것을 제공할) 여자가 생기면, 관계의 새로운 접점이 형성될 것이다. 엄정화쪽에서도 새로운 연인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감우성만큼 사고가 확 트인(?) 남자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아니면 그녀의 남편이 “눈치를 채고” 이들의 관계에

폭력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어떨까? 그러한 상황은 그녀가 혹여 고객만족을 소홀히 한 경우일 것인데, 그럴 경우에는 “폭력적 개입”보다는 그녀의

“직장으로부터의 해고”가 선행될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암시하듯이 이러한 균형점에서의 적정 거래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유추된다.

그녀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단, 좀더 현실적인 사태 종식의 시나리오가 한 가지 남아 있다. 바로 그녀에게 아이가 생기는 경우인데, 이럴 경우 그녀는 일단 매우 바빠질

것이다. 결혼이란 앞서 언급한 메커니즘대로 화폐, 노동, 성을 교환하며, 참여자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매우 소비적인 과정인 반면, 한편으로는

매우 생산적인 과정인데, 결혼이라는 생산과정을 통해 산출되는 유일한 생산물은 바로 “자식”이다.

자식은 일차적으로 성적 욕망의 거래와 충족의 부산물로 발생하나, 발생 이후부터는 화폐와 노동을 집어삼키는 블랙홀로 작용한다. 자식이 발생하기

이전의 두 남녀의 거래는 양의 총합(Positive sum)을 지니나, 자식이 발생한 이후의 두 남녀의 거래는 음의 총합(Negative

sum)이 될 수밖에 없다. 잉여노동 산물이 모두 자식에게로 투여되기 때문이다.

이 궁극적인 결혼의 산물인 자식- 자기 유전자의 반보존적 복제이자 정신적, 사회문화적 계승자인 “내 자식”을 생산해내기 위해 두 부부가

그들의 성과 노동과 화폐를 일생에 걸쳐 쏟아붓는 것이다★33

(이 과정을 매우 추상적인 용어로 ‘두 부부가 사랑으로 결합하여, 자녀라는 사랑의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우아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각설하고, 엄정화에게 자식이 생겨서(친부가 누구일지는 불확실★34

하지만, 그녀의 자식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녀의 잉여노동을 온통 자식에게 쏟아부어야 할 상황이 되면, 그녀가 감우성에게 줄

잉여노동이 격감하게 되므로, 위의 거래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 움직이게 될 것이다. 그녀의 지불수단이 화폐로 치환될 수도 있겠지만, 균형점이

맞아떨어지는 곳이 없게 되면, 관계가 이상 성립하지 않게 될 것은 불문가지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분할혼, 즉 결혼시장에서의 거래단위의 교란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감우성에게는 1개 이하의 부분혼이, 엄정화에게는

1개 이상의 중혼이 허용되는 이러한 거래단위의 유리수화는 분명 결혼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지불능력이 적은 사람에게는 불리하게, 지불능력이 높은

사람에게는 유리하게 작용될 것으로 예측된다★35

.

이것은 나★36

같은 사람에게는 분명히 두렵고 불길한 징후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하였듯이 시장의 유연화가 전체 후생을 증진시키는 합리적인 시장의 재편이요,

피할 수 없는 대세라면, 거부하는 것 또한 무망한 노릇일 터. 그보다는 나의 욕망과 능력★37

에 걸맞은 최적의 분할혼의 형태가 어떤 것이 될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다.

황진미(연세대 박사과정·전문의 chingmee@freechal.com)

/ 디자인 이윤진 yjklimt@hani.co.kr

★31 별로 잘 만들지 못한 포스터의 몇 글자 되지 않는 카피 중 가장 눈에

띄는 문구인 “이 남자와… 하고 싶다”에서, “…”에 들어갈 말은 아마도 ‘거래’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아니라구?).

★32 이 말에 의해 배제되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앞서 언급하였듯,

(유지태처럼, 아직 성장기를 거치는 중으로) 상대방과 불평등한 관계에 놓인 사람뿐만이 아니라, 봉건적 관계에 포획되어서 스스로 처분 가능한

잉여노동 산물이 하나도 없는 사람(일테면 마마보이, 마마걸) 등도 포함되며, 근대적 의미의 개인(또는 경제학에서 정의하는 합리적인 경제인)으로

진화되기 이전 단계의 모든 인간을 포괄한다. 전근대인인 이들에게 결혼은 여전히 거래가 아닌 예속이며, 결혼시장에서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집단의

선택이 관철된다. 예속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느슨하게 예속되어 있는 감우성과 엄정화가 도무지 불안해 보인다.

★33 물론 이것을 소비로 볼 것인지, 재투자로 볼 것인지는 가치판단의 문제이다.

자식을 통해 구현되는 자기 유전자의 복제와 사회문화적 계승을 도무지 무가치한 것으로 판단하는 사람에게는 이 과정이 당연 소비이고, 그것을 유의미하게,

아니 생의 의미가 오로지 거기에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에게는 당연 투자이다.

★34 감우성은 딴에 질외사정을 하고 있지만, 신뢰할 수 없는 피임법이다.

★35 이것이 ‘노동시장 유연화가 노동시장 참여율을 높인다는 당위성을 갖는다’는

앞서의 언급과 모순된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가령 대학입시에서 수시모집과 복수지원을 통해, 한 사람이 여러 시점에 걸쳐, 여러 곳에 지원할

수 있도록 바뀜으로써, 이전에 단 한번의 시험으로, 극히 제한된 범위의 지원만이 가능하였을 때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적이 우수한 수험생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그렇지 못한 수험생이 요행으로 대학에 잘 갈 확률은 그만큼 줄어들었다(그리고 획일적인 입시제도하의 규격에 맞지 않았던

수험생들을 포용한다). 이것을 “경쟁의 심화”, 나아가 “빈익빈 부익부”라고 할 수 있을까? 그보다는 “시장 다각화를 통한 합리적 재편”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36 나? 나의 욕망은 감우성처럼 부담없고, 쿨한 남자를 만나 재미있게 연애하고,

때때로 동거하고 싶은 것이지만, 내가 결혼시장에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나는 그녀가 능히 하였듯, 가난한 남자에게 방을

얻어줄 목돈이 없으며, 그녀처럼 살림할 능력도 없고, 무엇보다도 남자를 위해 기꺼이 노동을 바칠 의지가 없다. 더구나 성적 매력도 별로이다.

쩝. 따라서 내가 그녀처럼 만만한 남자와 살림을 차리지 않고 혼자서 살고 있는 것은, 그녀보다 정조관념이 뚜렷해서라거나 결혼의 신성함을 더

확신하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자본금이 없고 성실성이 없으며 여러 가지 능력이 모자라서이다(이보다 더 솔직한 자기고백은 없다).

★37 목돈은 없으나, 푼돈은 조금 있고, 일말의 상도덕을 지니고 있으며,

봉건적으로 예속되어 있지 않으며, 성관계를 갖는 데 장애는 없다는 것 정도?▶ 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1)

▶ 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2)

▶ 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3)